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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그립고 그리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연이 있는 것처럼 사람과 장소에도 특별한 연이 있는데 나한테는 인도가 그렇고 티벳이 그렇다.영혼 한 조각 두고 온 것처럼 계속 생각나고 허전하고 그리운 티벳과 중국만큼 친숙하지만 애증의 관계이기도 한 인도. 오늘같은 날은 특히 더 생각나서 울컥거리는 마음을 꾹꾹 눌러담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옛날 사진을 뒤적이며 달래본다. 그래도 지금은 이 곳에서 더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예전처럼 불쑥 떠나버리거나 하지 않지만 내 여행의 종착역이 어디인지 아주 잘 알고 있지. 티베트, 2007

루앙파방 야시장의 할머니

루앙파방 야시장에서 인형을 만들어 파는 할머니를 만났다.천편일률적인 제품을 파는 곳에서 유일하게 '작품'을 파는 분이셨다. 괴상한 표정의 가부좌를 튼 스님, 머리가 둘 달린 사람, 뿔 달린 악마 (괴물이었나?), 뒤로 뒤집으면 또 얼굴이 나오는 사람까지 한 작품 한 작품이 다 기발하고 독특했다. 반갑고 신기해서 나도 내가 만든 인형 '카이'를 보여드렸더니 유심히, 찬찬히 살펴보신다.특히 목에 건 카메라를 ^^; 결국 인형 세 마리를 사 가지고 왔는데그 중 한 마리는 우리 사무실에 매달려 있다. ^^ 나도 그 분처럼 할머니가 되어서도 계속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루앙프라방, 라오스, 2015

타브리즈(Tabriz)를 떠나며 '10

타브리즈를 떠날 때 짐을 빼서 숙소에 맡기고 나가려는데 방 문을 나서자마자 아이와 아빠를 만났다. 내가 묵었던 숙소는 열악하기는 하지만 가장 저렴해서 나같은 여행자도 묵고, 형편이 넉넉치 않은 현지인들도 장기 투숙하는 그런 곳이었는데 부녀는 그 곳에 사는 모양이었다. 뭐라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빠는 아이의 사진을 찍어주었으면 하는 것 같았다. 미얀마에서도 그랬다. 갓난쟁이 아이를 안고 있던 젊은 엄마는 카메라를 보더니 아이를 번쩍 들어보이며 찍어달라고 했다. 매일 보고, 옆에 있어도 또 보고 싶고, 남기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인가 싶었다. 나는 후다닥 달려나가서 사진관을 찾고 아이 사진을 인화했다. 빈 방 문 틈으로 사진을 집어넣으며 조금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도시를 떠났다. Tabriz, Ir..

시리아, 시리아...

20150909 라오스로 떠나기 전 시리아 소식을 접했다. 진심으로 마음이 아팠다. 내가 만난 무슬림들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손짓하며 들어와서 차 한 잔 마시고 가라 하고, 큰 배낭을 짊어지고 가고 있으면 먼저 차에 태워주고, 성인 남자 둘이 과일 쥬스를 시켜놓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관대하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터키나 네팔에 지진이 났을 때도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그건 자연재해니까 인간이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리아의 경우는 다르다.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인간의 욕심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고 다쳤다. 나는 마음이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보다는 내 손가락 살짝 베인 게 훨씬 더 신경 쓰이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산이 좋아서

20141028 산이 좋아서, 산이 그리워서 네팔로 날아갔다.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그렇게 산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어떤 작은 마을에서 영국인 청년을 만났다. 몇 마디 인사밖에 나누지 않았지만 그 청년은 산행에 부적합해 보이는 큼지막하고 우스꽝스러운 밀집 모자를 배낭에 달고, 마찬가지로 불편해보이는 무지개색 장우산을 가방에 꼽고, 면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었으며, 얇지만 편안해보이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 청년 주위를 감싸고 있던 공기는 누구보다 가볍고 자유로웠다. 갑자기 스스로가 웃기게 느껴졌다. 우기에 대비한 고어텍스 쟈켓과 등산화, 땀 흡수와 배출을 도와주는 기능성 티셔츠와 바지 그리고 스틱. 자연을 닮고 싶어서 뛰쳐나왔으면서 산에서조차 나는 온갖 가식과 인위로 무장한 채 아닌 척 하고 있다..

[실크로드 여행] 쿠처(库车)

이후에도 멋진 여행은 많았지만 신쟝 여행은 좀 특별하다.같이 했던 친구들이 좋았고, 20대 중반의 불안정함이 좋았고,기차역에 주저앉아 낄낄거릴 수 있음이 좋았다. 수업 땡땡이치고 놀러다닌 이야기,며칠씩 못 씻고 거지꼴로 돌아다닌 이야기,별 것도 아닌 이야기에 엄청 깔깔대며 웃었다. 오만방자하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던 小太阳과 편하고 좋은 친구들.지나가 버려서 더욱 그립기만 한 비단길 여행을 같이 해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쿠처역에서, 2007

[실크로드 여행] 쿠얼러(库尔勒)

지나치게 상업화된 첫번째 방문지에 실망한 우리는 아무 곳이나 다른 곳에 가고 싶었다. 어디 가 볼만한 곳이 없냐고 묻자 택시 운전사 아주머니는 그저 그런, 특색 없고 유명하지도 않는 곳에 내려다 주셨다. 뙤약볕 속에서 한참 계단을 올라 정상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묘하게 만족감과 해방감을 주었다. 시간도 많고 딱히 할 일도 없었던 우리는 아무 데나 주저 앉았다. 부드러운 바람이 솔솔 부는데 갑자기 친구의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사실 그 친구는 노래를 참 잘 부른다. 울림 좋은 목소리는 저음에서는 부드럽고 낮게 깔리고 고음에서는 안정적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는 좀처럼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아주 드물게, 본인이 진심으로 편하다고 느낄 때에만 노래 부르는데..

미얀마 바간에서 만난 친구

09년에 갔던 라오스 여행에서 만난 언니에게서 메일이 왔었다. "시현씨, 마무를 기억하세요?" 기억하다마다! 얼굴 한 가득 해바라기 같은 미소를 지었던 동갑내기 친구 마무는 미얀마에서 나를 진짜 '친구'로 대해준 첫 번째 사람이었다.(그녀가 환하게 웃는 사진은 지금도 내 방 책꽂이에 올려져있다.) 이 언니는 내가 미얀마를 다녀온 이듬해에 미얀마를 여행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만났던 친구를 만난 모양이었다.마무는 그 언니를 만났을 때 시현이를 아느냐고 물었다고 했다.내가 무슨 유명 인사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니고, 그냥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한국 사람을 만날 때마다 시현이를 아느냐고 물어보았을 그녀의 순진함과,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잊지 않고 나를 기억해준다는 사실에 코끝이 찡해졌다..

인도 바이크 여행

바이크 여행은 나에게 엄청나게 큰 자유를 선물해줬다. 이동의 제약에서 벗어나 흙먼지와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달린 라다크, 잠무 카슈미르는 신이 내린 선물이었다. 내가 다시 라다크를 간다 해도 이 때만큼 자유롭고 신날 수 있을까? 아무도 찾지 않는 시골길. 그 길에서 만난, 동양인 여행자를 신기해하는 눈 큰 인도인들. 유명한 사원이나유적지보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시골길이 더 기억에 남고, 그 때 들이마신 뜨뜻한 바람과 초록 풀내음이 이렇게 그리워질 줄이야. 아무 것도 아니어서 더 오랫동안 살아있는 생생한 기억의 장면들이다.

India/'09-'10 India 2018.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