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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쓰촨(云南四川) #9 야딩(亚丁)

kai.lasa 2018. 11. 2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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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9 

 

 

아침에 흰 죽에, 어제 정성스레 만들어주신 반찬에 차까지 마시고 곧 야딩으로 떠났다. 갔다 내려와서 또 자라는 할아버지 말씀에, 짐을 두고 갈까 가지고 갈까 고민하다 우선을 짐을 다 들고 갔다. 

나한테 쑤요차 섞는 거? 우려내는 거 해 보라 하시길래 했는데 맘에 안 드셨는지 곧장 다시 가지고 가셨다. ^^;; 저런 통 안에 야크 버터와 찻잎 등을 넣고 막 찧어서 우린다. 

 


 

10시 좀 안 되어 야딩 매표소에 도착해서 기다렸다. 우리 말고도 10명 정도 되는 중국 학생들이 있었다. 오늘은 이 안에서 자고 내일 2시에 또우디랑 만나기로 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입장료 80위안 + 셔틀 버스 60위안 / 전동차는 50위안인데 지금은 운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셔틀 버스 타고 가는 길도 상당히 멀다. 예전에 오빠가 왔을 때는 산장이 있는 곳까지 빵차를 타고 올라간다고 했는데 지금은 빵차는 매표소까지 밖에 못 올라오고 꼭 셔틀버스를 타야할 뿐만 아니라 - 송짠린쓰(松赞林寺)의 셔틀 버스처럼 - 산장도 사라졌다. 여행객들은 모두 야딩촌에서 묵어야 한다. 

셔틀에 큰 짐을 두고 올라갔다. 오늘은 거리가 2km가 안되는 쭈어마라춰에 가기로 했다. 야딩에는 금강보살, 문수보살, 관음보살로 신격화된 세 개의 설산과 세 개의 호수가 있는데, 이 중 관음보살로 센나이르 설산과 쭈어마라춰의 접근성이 가장 좋다. 다음 날 2시 전까지 왼쪽 부분(서쪽)까지 갔다 오는 건 무리라 아쉽지만 그건 패스하기로 했다.

길이 힘든 건 아닌데 고도 때문인지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게 숨이 차고 벅차다. 언니는 다친 발가락 때문에 더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런데 햇빛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아무 데나 팍팍 눌러도 그림이다. 빛이 너무 좋으니까 온 세상이 다 누르기만 하면 작품이 된다. 눈물 날 정도로 아름다운 파란 하늘이다.

야딩에서 가장 높은 산인 센나이르 설산(仙乃日雪山, 해발 6,032m로 ) 하지만 주봉이 뾰족하지 않아서 그런지 그렇게 높다는 느낌이 안 든다. 따오청에서 야딩 오는 산길에 계속 보였던 게 바로 이 산이다. 

센나이르 뒷편에는 해발 3,960m의 쩐주하이(珍珠海, 쭈어마라춰)가 있다. 진주해(쭈어마라춰의 옛 이름이다.)에 도착해서 설산 보며 간식 꺼내먹고, 사진 찍고, 샨동에서 온 중국 청년들 설정 사진 찍으며 노는 것 구경하다 살랑살랑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 특히 총고사 부근은 사진 찍기에 너무나 좋은 빛이다.

너는 이거 타고 올라가야 해! 여기서밖에 못 자! 하고 정해놓은 길이 싫어서였는지, 어제 또우디네 집에서 느꼈던 따뜻함 때문인지 야딩에서 자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래서 여기에서 오늘 내려가버리기로, 또우디네 집으로 다시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누군가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니우나이하이(牛奶糊)와 우써하이(五色海)를 안 보고 그냥 내려갈 수가 있어? 

아마 4,500m, 4,600m의 니우나이하이와 우써하이는 감격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 주위를 둘러싼 설산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이 때 우리는 자연보다 사람에 더 끌렸고, 일말의 아쉬움도 없이 친구네 집으로 내려갔다. (지금까지도 이 때의 선택에는 조금도 후회가 없다.) 혹여 야딩에 다시 가게 되더라도, 그 때보다 더 개발되고 관광화된 야딩에는 가지 않고, 지금은 없어졌을지도 모를 친구네 집을 찾아서 가겠지.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길은 불안불안했다. 눈 쌓인 길을 내려가는데 버스가 절벽 쪽 가드레일을 심하게 한 번 박은 적도 있고 계속 불안하게 갔다;; 

 

매표소부터 또우디네 집까지도 거리가 한참이라 어쩌나 했는데 매표소까지 내려와서는 리쟝에서 온 한족 아저씨 차 - 리쟝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는, 여유있어 보이는 전형적인 한족 아저씨 ^^ - 를 얻어탔다. 그 아저씨는 자기네 숙소에서 묵고, 음식값도 비싸니가 같이 장 봐서 같이 해먹자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그 숙소에 묵을 게 아니었어서 같이 밥 먹기도 애매하고,, 결국 인사하고 떠났다. 

오빠가 또우디네 집을 기억해서 짐 메고 걸어가기로 했다. 우리가 큰 배낭 메고 걸어가니까 그 쪽 아니라고, 숙소는 저 쪽에 있다고 하시는 것 같았는데 '장족 친구'라 하니 가라고 하신다. ㅎ 

오빠가 길에서 만난 아이들, 할머니들 사진 찍어드리는 사이에 길에서 또우디 어머님이랑 부인을 만났다! ^^ 먼지를 뽀향게 뒤집어쓴 게 한창 공사 중인 리조트 공사장에서 인부로 일하나보다. 

집에 웬 여자 애가 하나 더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또우디 여동생 딸이란다. (또우디는 어제 간 사원 근처에 사는 남동생이 하나, 그리고 여동생 하나가 있다.)

가족들이랑 같이 저녁 먹고, 짱위(藏语) 배우면서 놀고 있는데 밤 늦게 또우디가 돌아왔다. 내일 오겠다던 사람들이 말도 없이 자기 집에 떡하니 와 있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ㅋㅋ 같이 좀 더 이야기하고 놀다가 들어가서 초 피고 차 마시다 잠들었다. 이 곳은 정말 너무 좋은데 잠이 쉽게 안 든다. 

 

티베트어 배우고 싶다..

야딩에 공항이 이미 생겼고, 주변 경관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흉물스러운 리조트가 들어가서가 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장족들이 아버지의 아버지 이전부터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잃고 떠나갈 것이다..

야딩도 지우짜이거우(구채구, 九寨沟)처럼ㄹ 변할 것이다. 그 곳도 예전에는 장족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마을이었는데.

우리 친구 또우디도 더 이상 빵차 운전으로 먹고 살기 힘들어질 것이다. (이미 따오청에서는 공안들이 가격 흥정하는 빵차들을 규제하고 있다.)

리조트 공사가 끝나면 쪼무(또우디 부인)는 할 일이 없어질 것이다.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그녀는 한다 해도 허드렛일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갓 세 살인 용쩐이는 어떻게 될까? 

괜히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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