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pal - Trekking/'10 Annapurna circuit

<안나푸르나 라운딩> 0-0. 그래서 나는 네팔로 갔다.

kai.lasa 2010. 12. 1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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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7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데 타이밍(적절한 시기)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 수많은 만남 가운데에서도 더 특별하고 연이 깊은 만남이 있는 것처럼
사람과 장소 사이에도 그런 타이밍과 특별한 연이 존재하는 듯 하다.

작년에 집을 떠나온 이래 계속해서 서쪽으로 이동 중이던 나의 발걸음을 잡아 끈 것은 다름아닌 '히말라야'였다.
중동의 미칠듯한 태양, 메마른 산, 내 몸 안의 모든 수분이 말라버릴 것 같은 건조한 공기, 황량한 벌판, 사막, 무엇보다 친절한 무슬림들.
모두 다 무척 좋았지만 무의식 중에 몸과 마음은 푸르름과 물기를 살짝 머금은 공기를 그리워하고 있었나보다.

그래, '산이 나를 불렀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겠다.
서쪽으로 가던 내게 산은, '지금 어서 내게 오라'고 손짓을 했고, 그렇게 나는 네팔로 날아왔다.

지금 내가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위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작년의 기억이 떠올라서일지도 모른다. 작년 ABC 트레킹을 하던 때의 행복한 기억.
당시 나는 몸이 별로 좋지 않아서 어깨에 누군가가 올라 타서, 머리를 짓누르는 느낌을 달고 살았는데 8박 9일간의 산행을 끝내고 나니 거짓말처럼 그 불쾌감 - 나는 그 느낌을 '돌부처가 강림했다'고 표현했었다. ㅡㅡ; - 이 사라졌다.

이번에도 그 때와 같은 '정화'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며 알게 모르게 몸에 쌓인 독소들,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 오랜 시간 억눌린 채 쌓여있는 감정의 때를 깨끗이 청소하고 싶은가보다. 무엇보다 3년이 넘도록 나를 괴롭히고 있는, 몸 속 어딘가가 꽉 막혀있는 느낌에서 제발 이번에야말로 벗어나고픈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어쩌면 그 모든 이유를 합친 것보다 더 크면서도 단순한 이유일 수도 있겠다.

그저 '걷고' 싶었다.

하루 온종일 걸으면서 잃어버린 신체의 감각을 되찾고,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걷다가 내가 없어지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 내가 풍경 속의 일부가 되어 그저 존재하기만 할 뿐인, 그 황홀하면서도 영광스런 느낌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껏 나와 풍경이 하나가 되는 느낌은 꼭 두 번, 내몽고에서 처음으로 초원을 보았을 때와 '빌링엔'이라는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있었다. 초원에서의 감동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보이는 것은 푸른 초원과 잿빛 하늘 밖에 없었다. 초원 한 가운데에 홀로 서서 바람을 맞으며, 이대로 내 몸이 더 이상 나뉘어질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단위까지 나뉘어 그 '풍경' 속에 들어가 버리면 좋겠다고, 내 존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그 속에 스며들어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감정이라는 호수에 1mm 만큼의 파장도 일어나지 않는 지극히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경험했다.)

그 때와 같은 축복받은 느낌을 재현시키고자 하는 마음 앞에 비가 온들, 거머리가 솟아난들, 설산이 보이지 않들 문제될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내가 갈 수 있는 지금이 최적기, 베스트 타이밍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더욱 에너지 넘치고 감사하고 행복한 여정이 되리라 믿는다.

-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앞두고, 카트만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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