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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안 여행/등산

나 홀로 떠나는 지리산 종주 - 둘째날(노고단 - 연하천 - 벽소령)

by kai.lasa 2011.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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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5.19

기상 05:00
출발 05:35
연하천 대피소 도착 11:12 - 점심 식사
연하천 대피소 출발 12:20
벽소령 대피소 도착 14:40
 

간밤에 잠을 잘 못 잤다. 피곤해서 잠에 확 빠져버릴 줄 알았는데 10시 넘어서까지 뒤척거리다 잠들었는데 그마저도 한 두시간마다 한 번씩 깼다. 5시 경 일어나서 짐싸고 5시 35분에 출발했다. (5시만 되어도 이미 훤하다.)

 

 

노고단 대피소 - 아침

 
 

오늘은 어제와는 달리 새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어제는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새소리도 못 들었을까..

 

 

노고단

 

 

 

 

 

 

초반 코스는 오르막도 무난하고, 간간히 평지도 나와서 걸을만 했는데, 점차 오르막이 가파라진다.

 

 

 

 

가파른 오르막을 쉬엄 쉬엄 올라가니 어느덧 연하천 대피소이다. 길에서 많이 마주친 정읍고 학생들이 왁자지껄 식사를 준비하며 먹고 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할 때 단체로 온 영국 학생들을 보면서 우리 나라에는 이런 식의 자연 친화적인 교육이 없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다. 친구들이랑 같이 와서 자기 짐 자기가 들고, 산 타고, 밥 해먹고. 좋아보인다 :)


이번에도 버너가 잘 안 되어서 이걸 어쩌나 하고 있는데 길에서 인사 나눴던 아버님께서 도와주신 덕에 다행히 물 끓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식사도 같이 했는데 반주도 얻어 마시고, 고기도 얻어 먹고, 접 뜯어 오신 산나물까지 맛 볼 수 있었다 ^^


식사하고 오늘 예약해 놓은 벽소령 대피소로 향하는데 짧은 거리에 비해 길은 평탄치 않다.오르막이 급경사로 이어지는가 하면, 내리막도 그렇게 경사가 심하고 위험할 수 없었다.

가운데 돌로 된 부분이 다 오르막 길이다.

 
 

(다음 날 걸어보고 나서 이 날은 장난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긴 했지만;;)



2박 3일간 나와 함께 해 주었던 배낭과 스틱 - 고마운 녀석들

 

 

 

 

어제하고 오늘 오전 땀 몇 말을 쏟아내며 노폐물과 독소, 온갖 부정적인 것들을 배출했더니 오늘은 그 이면에 깔려있는 감정들이 마구 올라오나 보다.  그래, 그건 슬픔과 서러움이었다. 부정적인 것들이 빠져나가고 나면 빠져나간 곳에 산기운을 가득가득 채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경험해야 할 슬픔들이 아직 남아있나 보다. 울적했고, 외로웠고, 지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기대어 보살핌 받고 싶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난 그냥 이 감정들을 온전히 경험하고 내가 진정 '나'일 수 있기를 바란다.



 

 

 

 

벽소령 대피소에 생각보다 많이 일찍 도착한 탓에 느긋하게 쉬면서 정리하고, 음악 들으며 일기 쓰는 여유를 누렸다. 

벽소령 대피소

 

 

 

 

어제 충분히 못 잔 것과 산행의 피로가 급격히 몰려온다.

앞으로 또 우리 나라 산에 갈 때에는 혼자서 가야겠다. 독 산행의 매력. 이 즐거움은 나 혼자서만 즐기고 싶다. 산 속에서는 나와 산만 있을 뿐, 타인에게 맞출 필요도 없고, 혹은 맞춤 당하는 도움이나 배려, 간섭도 없다. 그냥 온전히 나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이 시간과 타인이 지나치게 들어오지 않는 이 정도의 거리가 딱 좋다. 나는 아마도 이 거리감 안에서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끼나 보다. 결국 이것도 부숴버리고 없애버려야 할 것이겠지만 당장은 이게 좋다..

술이 약한 나는 저녁 때 어르신들께서 주신 특제 복분자 위스키 한 잔에도 얼굴에 열이 오르고 알딸딸해져서 잠에 빠져들었다. 간만에 느끼는 행복함과 충만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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