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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안 여행/등산

나 홀로 떠나는 지리산 종주 - 첫째날(화엄사 - 노고단)

by kai.lasa 2011.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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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5.18

조치원 기차역 출발 08:22 (기차 14,200원)  

 

조치원 기차역

 

 

 
 

구례구역 도착 11:35
구례 버스터미널 도착 11:50 (버스 1,100원, 10분 소요)

구례 버스터미널 출발 12:30

(버스 1,100원, 10분 소요)


화엄사 입구 도착 12:40

 

 

화엄사 입구에서 화엄사까지는 1km 가량 떨어져 있다.

 

노고단 도착 17:00



어제 밤늦게까지 짐 싸다, 오랜만에 산 탈 생각에 설레다 늦게 잠든 탓에 기차에서는 옆자리에 어떻게 생긴 사람이 탔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잤다.

실컷 자다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밖을 보는데.. 
우리나라 산천은 뭐랄까... 앙증맞고 귀여운 느낌이다. 동글동글 상냥해보이는 산과 도도히 흐르는 강물. 세계 여행하면서 이 풍경이 무척이나 그리웠던 적도 있었다.

이번 산행은 여행이라기보다는 비워내기 위함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도 바랐던 지리산의 품에 폭 안겨 남김없이 비워버리고, 그러고 나서 다시 채우고 싶었다.

산행이 시작되어야 비움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기차가 앞으로, 앞으로 움직일 때마다, 
차창 밖 풍경이 무심히 빠른 속도로 지나갈 때마다 내 마음을 뒤덮고 있던 것들이 한꺼풀씩 벗겨져 나간다.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알게 모르게 그간 받았던 압박감이 상당했던 모양이다. 잘 해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 가치와 능력을 증명해 내고 인정받아야 한다, 숨죽이고 주변을 살펴야 한다, 안심시켜 드리고 돌봐드려야 한다.. 등등등. 
산에서만큼은 나를 옭아매는 그 모든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만큼은 나 자신이다.

한 시 무렵 화엄사 입구에 도착해서 걷기 시작했다. 



 

 

화엄사 가는 길

 

 

초반 길은 괜찮았다. 숲길에 그늘도 지고, 길도 평탄하고.


 

 

 

 

5.1km까지는 괜찮았다. 4.5km까지도 힘들긴 했지만 참을 만 했는데, 그 이후로 2.5km에서 마지막 1.5km까지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너무 힘들어서 잡생각이 저절로 머리에서 날아가는구나..

점점 경사가 급해진다.

 

발이 빠른 편이 아니기 때문에 해 지기 전에 노고단까지 도착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오래오래 쉬지 못하고 잠깐씩 자주 쉬면서 기어가는 걸음으로 오르막을 올랐다. (카메라는 집어넣어 버리고 스틱 하나만 쓰다가 나머지 스틱까지 다 꺼내어 쓴 지 오래이다. -_-)

 

무슨 생각을 하며 올라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조금만 참자, 조금만 더 참자.. 제발 성삼재에서 갈라지는 편한 길 나타나라.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에서부터 힘듦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는 '아~ 내가 이 고생을 왜 사서 한다 그랬을까..'라는 생각까지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나중에 어르신들한테서 들은 이야기인데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올라가는 길이 코 박고 기어간다고 해서 '코재'라고 불릴 정도로 가파르고 힘든 길이라고 한다.

그러다 탁! 하고 평탄한 길이 나왔을 때의 감동이란!! 여기서부터 노고단까지 마지막 1.2km는 지극히 편한 산책로이다. 다행히 해 떨어지기 전에 시간 안에 대피소에 도착했다.


노고단 대피소

 

요즘 해가 길어져서인지 산에서도 7시까지는 해가 있다.

 
 

뻑뻑해진 다리를 끌고 대피소 취사장에서 저녁을 해 먹으려는데 버너가 말썽이다. 모두 다 가스 버너를 쓰는 요즘 시대에 난 옛날에 아빠가 쓰시던 휘발유 버너를 가져왔다. 어제 집에서 해 봤을 때는 잘 됐는데 내가 익숙지 않은 건지, 아니면 오래되어서 문제가 생긴 건지 불이 안 켜진다. 

 

취사장과 탈 많았던 버너, 코펠



옆에 계신 분께 도움을 청하니 켜 주시기는 했는데 15분을 못 간다. (햇반 익히려면 15분은 끓여야 하는데..) 게다가 코펠이 너무 작아서 물이 넘치기까지 한다. 마음씨 좋은 옆 자리 어머님, 아버님께서 남는 코펠도 빌려주시고, 심지어 두 분 밥 하시던 것까지 내려 놓고 내 것부터 끓여서 주셨다. ㅠㅜ 한국 어머님, 아버님의 인심에 감동 받았다.. 그나저나 내일부터는 어쩌나? 에이.. 어떻게든 되겠지. 그건 내일 가서 생각하자.



 

 

노고단 대피소에서 본 석양

 

 

그래도 뭔가 무척 무척 뿌듯하다!! 생애 첫 지리산 종주! 8kg이 넘는 짐 짊어지고 장하다! :) 오늘은 아무 생각 없이 꿀처럼 달콤하고 깊은 잠을 잘 수 있겠다. ^^

 

숙소 - 씻을 수는 없지만 휴대폰 충전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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