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01.
Day 9. 방콕 : 테웻 시장(Tewhet Market) - 짜뚜짝 주말시장(Chatuchak weekend Market)
원래는 카오산로드가 가까워서 밖에 나가서 아무 거나 사먹으려 했다. 그런데 호텔 레스토랑에서 강 보며 밥 먹는 사람들 보니까 좋아보여서 나도 내려가서 강 보며 먹기로 결정했다.
아침 식사 여유롭게 하고 직원에게 “커쿤카-”(고맙습니다) 배웠는데 발음 좋다고 칭찬 받았다 ^^
방에 돌아와서도 개인 테라스에 비스듬히 누워 멍 때리고 일기 쓰며 한참을 보냈다. 호텔이 너무 좋으니까 나가기가 싫어진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살짝 졸리기도 하다. 발코니에 기대 밀린 일기를 썼다. 가림막이 있고 개인 공간이 있으니까 너무나 편안하고 마음이 놓인다. 이제껏 있었던 곳 중 가장 마음이 편한 것 같기도 하다. 아무 생각도 안 들고 멍 때리게 되고 나른나른 졸리기도 하고.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속에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긴장이 사르르 풀리는 느낌이다. 나는 가림막이 있는 이만큼의 안전 거리. 안전한 공간 안에 있는 것이 편한가보다.
마사지를 받아볼까해서 알아봤는데 유명한 마사지는 다 며칠 전에 예약을 해야되는 거였다. 마사지 받으려고 방콕 왔는데 ㅠ 안 알아보고 대충대충 해서 그런가; 결과적으로 이 날 고급 스파에 가서 마사지를 안 받은 게 나한테는 훨씬 더 좋은 일이 되었다. 가브리엘 천사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환율이 좋다는 rainbow 환전소랑 panee 환전소를 찾아갔다. 환율은 둘 다 거의 비슷하다. 카오산 로드 구경할 겸 rainbow 환전소까지 가서 환전했다. 정돈된 느낌의 람부뜨리 로드와는 달리 카오산로드 곳곳이 공사하느라 정신이 없다.
10년 전에 태양이 내리쬐는 카오산로드를 혼자 걸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밤에는 게스트하우스 사람들이랑 우르르 몰려가서 카오산로드에서 밥 먹고 구석진 허름한 가게에서 식사도 하고. 푸팟퐁 커리 하나 시켜서 나눠 먹으면서 너무 맛있어서 더 먹고 싶어하고 ^^
기억이 묻어있는 장소들을 찾아나갔다. 노란 건물들과 대로, 중간의 조형물. 이런 게 기억이 나는 것 같다. 미얀마 비자 받으러 나갔다 오면서 엄청 걷고 노란 건물에 있던 세븐 일레븐에서 편의점 커피 한 잔 사서 가는데 별로 맛은 없었던 기억이 난다.
신쟝 사진을 볼 때 느끼는 것처럼 미쳐버릴 것 같다. 나는 고스란히 기억하는데 시간은 흘러버렸고 지난 시간을 내가 어쩌지 못하는 절대적인 힘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는 너무나 슬프고 서럽고 사무치는 느낌. 내가 종종 느끼는 이 느낌은 어디에서부터 온 걸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면 나는 지금 이 순간. 2020년에 혼자서 캄보디아와 방콕을 누비던 이 시간을 엄청나게 그리워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에 좀 더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으로도 더 많이 남겨놓아야겠다. 분명 그리워질테니.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카오산로드를 지나 람부뜨리 로드에서 식사를 했다. 창가 쪽 자리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여기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멍 때리게 된다. 한국에서는 늘 무언가를 하고 머리 속에 집어넣기 바빴는데 아무 것도 안하고 멍 때리는 이 시간이 참 좋다.
발 마사지 받고 로컬 시장으로 향했다. 밤람푸가 아주 가까이 있었고 Samsen Road를 따라 올라가면 Thewet market이 나온다니까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아마존 카페에서 라떼 한 잔 샀는데 쓰기만 하고 진짜 맛이 없었다. 잠시 앉아 구글맵으로 길 한 번 확인하고 맛 없는 커피도 던져버렸다.
그리고 여기에서 천사를 만났다. 그에게는 나와의 만남이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기억에 남고 고마운 진짜 천사였다.
이름이 Gabriel인 그는 갑자기 나한테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지금 생각해보건데 아마 내가 길을 몰라서 구글맵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테웻 시장(Thewet market)에 간다고 하니까 같이 가자고 한다. 처음에는 즉흥적이고 정신 없는 애인 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 디테일한 상황들만 흘러가게 내버려뒀을 뿐 큰 줄기에서의 계획은 가지고 있었다. 홍콩에서 온 그는 방콕에 있다 Full moon party에 갔다 베트남, 싱가폴, 말레이시아에 갔다가 3월에 두바이에 가서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에서 커피 마실 거라고.
동행이 생긴 데다 구글맵으로 길도 잘 찾기에 가는대로 따라갔다.
시장에 도착했는데 열려있기는 했지만 닫힌 상점들이 많았다. (마음이 맞고 진짜 괜찮은 동행을 만나기 바랐는데 동행이 생기니 사진을 찍을 수가 없구나;; 대화하랴 길 따라 가랴 사진 찍으랴 세 가지를 다 할 수가 없었다)
짜뚜짝 시장에 같이 가기로 했다. 뚝뚝 기사가 270을 부르는데 “프렌드” 이러면서 아주 쉽게 200으로 깎아버렸다.
골목 다닐 때도 느꼈지만 나 혼자 있었다면 절대 그런 골목길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길가에 옷차람이 단정치 못해보이는 남자들이 서너명 몰려있으면 그 쪽으로는 지나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건 무의식 중에 아주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이다. 체구가 작은 여자 혼자 여행다니면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이지만 최대한일 수 있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가브리엘은 달랐다. 아무나한테 ‘헬로’ ‘헬로’ 외치고 후미진 골목에도 거침없이 들어갔다. 가격도 쉽게 쉽게 깎고 뚝뚝 기사한테나 버스 승객한테도 스스럼없이 말 걸고. 진짜 보기 좋았다. 자유롭고 당당하고 거침없는 모습이 딱 내가 멋있다고 생각한 그런 모습이었다. 정말 좋은 멋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여행 마지막 날 그런 사람을 만났다.
천사랑 짜뚜짝 시장에 갔다.
둘 다 큰 돈밖에 없어서 돈을 깨야했는데 가브리엘은 물 사면서 잔돈을 만들었다. (내 물도 사주고!) 내 돈도 깨야해서 여기저기 물어봤는데 두세번 거절당했다. 가브리엘이 물어보면 해 줄것처럼 하다가도 막상 내가 돈을 꺼내들면 안해주는 거였다. 결국 자기한테 돈 줘보라고 해서 가브리엘이 받아서 물어보니까 바로 바꿔준다. 뭐지?? -__-
버스 타고 카오산로드로 돌아가는 길은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사진 주고 받으려고 메신저 어플을 까는데 가브리엘은 위챗이 안되고 나는 왓츠업 인증이 안되고;; 데이터를 다 써서 너무 느리니까 그런 것도 안된다. 가브리엘은 인증 때문에 자기 번호 알려고 버스 뒷자리에 앉은 사람한테 물어봐서 자기 번호 알려고 한 번만 전화해도 되냐하고 별 짓을 다했다. 나는 결국 가브리엘 와이파이 잡아서 왓츠업 인증하는데 성공했다!
카오산로드 내려서 람부뜨리로드 지나 호텔까지 데려다줬다. 8시에 무에타이 보고 그 다음에 루프탑에서 한 잔하며 영화 볼 거라고 같이 가지 않겠냐고 했다. "You've invited." 라고. 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다음날 4시반에 일어나 공항에 가야하는데 무리가 될 것 같아 제대로 대답하지를 않았다. (그 이후에 가브리엘이 챗 보내고, 내가 못 보고, 얘기 없이 호텔로 데리러 왔는데 내가 잠들어서 못 보고.. 완전 엇갈려버렸는데 계속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
추천 받은 식당 peep은 문을 닫았고 Hemlock에 갔다. 다들 예약해서 오고 나만 혼자 동양인이었다. 요리가 너무 많아서 뭘 시킬지 모르다가 크랩 팟타이를 시켰는데 너무 맛있다! 팟타이가 밖에서 먹는 것처럼 짜기만 한 게 아니구나. 이렇게 값어치있는 요리라니! 요리 나오기까지 한 시간이 걸렸고 먹고 나니 8시 반이 넘었다. 바로 옆 재즈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너무 좋다.
사진 찍으러 카오산로드 근처까지 갔다 피곤이 올려와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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