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22.11.20.
일정 클룩(호로그) - 단가르(Dangar)
새벽 5시에 깼다. 너무 일찍이라 가만 누워 있는데 L이 별 보러 나가자고 한다. 총총히 별이 박혀있는 것이 너무 예뻐서 옷이랑 카메라 챙겨서 사진 찍으러 나갔다. 광해가 없는 곳으로 가서 찍으려고 했는데 멍멍이가 엄청 짖는다. 컴컴한 곳으로 가서 찍으려고 했는데 멍멍이가 끈이 안 묶여있어서 담장 위에 서 있는데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수 있을 높이이다.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어서 사진 찍어보려고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멍멍이가 나타났다. 엄청나게 경계하면서 짖어대는데 순간 우리는 다 얼음이 됐다. J가 주머니에 손 넣은 정도로도 엄청 짖길래 조금도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았다. 그야말로 멍멍이한테 쫄아서 별 사진도 거의 못 찍고 멍멍이가 다른 곳으로 갔을 때 눈치 봐가며 들어왔다. 쫄보쫄보 ㅜ 주변에 사람 한 명 없고 멍멍이는 계속 짖어대고 도움 청할 곳도 없어서 어쩌나 했는데 무사히 지나가서 다행이다 휴~~ 맹수한테 습격당할 뻔했다. ㅋㅋ
들어와서 뜨뜻한 물로 샤워하고 (내일이랑 모레는 못 씼는다고 오늘이 마지막 샤워할 수 있는 날이라고 했다 ㅎㅎ) 들어와서 밀린 일기 쓰고 여유를 부렸다.
아침 식사를 후다닥 거의 5분만에 하고 (빵에 요거트 발라 먹으니까 맛있다~) 계란 후라이도 먹고 삶은 계란도 하나씩 있고. 이브라힘이랑 가족들 불러서 가족사진을 찍어줬다. 11살, 10살짜리 딸 둘, 8살짜리 아들 하나. 아이들이 셋이었는데 집 앞에서 찍어주고 우리 방으로 들어와서 사진 인화해서 줬다. 그 다음에 침대에 모여앉아있는 모습이 예뻐서 한 장을 더 찍었다.
9시 출발이라 나갔는데 알리가 아직 안 와서 동네 살짝 걷다 보니까 알리가 왔다.
짐 싣고 출발! 돌아오는 길에 또 여기에서 잔다고 한다.
다리 앞에서 내려서 사진도 한 번 찍고. 오늘 가는 곳 이사카심에는 가게가 다 문을 닫아서 식당도 연 곳이 없어서 먹을 것을 사가지고 가야 한다고 했다. 슈퍼에서 내려서 엄청 큰 논이랑 버터랑 사과 4개랑 알리가 고른 달달한 빵이랑 사가지고 이제 진짜 출발!
첫째날이 윈도우 배경화면에, L 표현을 빌자면 소 등을 구겨놓은 것 같은 산등성이를 보며 달렸다면, 둘째 날에는 동화같은 아프가니스탄 풍경과 노란 단풍, 간혹가다 보이는 설산을 보고 달렸다. 셋째날인 오늘은 설산의 향연이다. 설산, 설산, 그리고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돌산. 너무 좋고 너무 아름답다. 평화롭고 평온하다.
가는 길에 자그마한 사원에도 가고, (양뿔은 보호의 의미라고 한다) 천정에는 4개의 원소가 있다고 했다. 알리는 우리의 좋은 여행을 위해 빌었고, 나도 마침 주머니에 있던 한국돈 200원을 봉헌하고 기도를 했는데 알리가 기념이라고 소모니랑 바꿔가지고 갔다.
Fortness 두 군데를 보고, Bibi Fotima 온천에 갔다. 영험한 물이라 아이를 못 갖는 사람들이 기도하면 아이가 생긴다고 하고, 다른 소원들도 빌어도 된다고 하는 홀리한 곳이었다.
알리는 온천에 들어갔다 나왔고, 우리는 차에서 기다리면서 빵에 버터 발라먹었다. 너~무 맛있다. 왜 이틀 지난 빵도 여전히 안 딱딱하고 맛있는 걸까?
알리도 차 안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박물관에 들렀다.(L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안 갔다) Solar calendar가 있는 곳.
박물관 주인이 너무 열심히 설명을 해주셨다. 눈빛에 자신감이 느껴지고, 파미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집 옆에 박물관을 꾸며놓고 관람객이 오면 물건 하나 하나 열과 성을 다해 설명해주시나보다. (악기로 음악 연주도 해주셨는데 페르시아 음악 같은 느낌이다. 반음이 살짝 살짝 올라가있는 것 같은 희한한 느낌) 잡히는 대로 지갑에 있던 30 소모니를 팁으로 드리고 해 달력 solar calendar를 보러 갔다.
L이 기다리고 있는 차로 돌아가는 길에 홈스테이를 하시는 분이라는, 예전에는 러시아어를 가르치셨다는 분과 인사했다. 인상이 무척 좋은 분이었다. 그런데 물 문제 때문에 동네 사람들 모두 수로 공사하느라 분주해보였다. 그래서 여자들, 아이들이 그렇게 물 양동이를 나르고 있었나보다.
L이 차 있는 곳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가가도 사람들이 냉랭해서 아주 다른 느낌이라고 했다. J도 공항에서 경직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물론 나도 공항에서 경직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표정이 딱딱하고 입국 수속해준 여자분이 인상을 쓰고 있는 걸 보기도 했고, 길 가면서 눈 마주치는 사람이 선하게 웃어주는 것이 아니라 “저거 뭐지?” 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는 걸 알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 밝게 웃으면서 인사해주는 사람들도 많고 아이들도 수줍어 하면서 인사해주고 좋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만났을 때는 거의 다 친절한 느낌이었는데 왜 그랬는 줄 모르겠다. 알리랑 같이 있을 때, 관광객인 걸 알 때, 혹은 그룹으로 다닐 때에는 친절한데 이방인 한 사람을 볼 때는 냉랭한 건가?
설산은 아무리 많이 봐도 절대 질리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에 알리가 어떤 곳에 잠깐 들렀다. 알고 보니 우리는 오늘의 목적지인 Dangar에 이미 도착한 것이고 원래는 거기에 묵으려 했는데 주인장 식구가 다 닫고 두샨베로 간다고 한 것이었다. 우리는 얘기가 되어있는 다른 숙소로 갔다. 비수기 때에는 사람들이 아예 닫아버리고 도시로 나가나보다.
집 안에 들어오니 박물관에서 설명 들었던 파미르식 가옥 구조에 난로가 공기를 데워주고 있었다. 훈훈하고 따뜻하다. 먼저 와 계신 분들이 있었는데 괌에서 살고 계신 의사 부부가 있었다.
분위기도 좋고 다 좋은데 마을 전체가 정전이었다. 충전은 어떻게 하지?
그러다 든 생각이 내가 사진 남기는 것에 집착하고 있구나. 예전 같았으면 정전 상황도 유니크한 상황이니까 촛불 켜고 마냥 즐거워했을텐데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전기와 충전에 집착하게 된다. J가 J 핸드폰이라도 빌려주겠다고 하셨다. 사진을 못 찍게 되면 그냥 눈으로 담고 기억에 새기고 글로 쓰면 되는 건데. 이러한 것으로부터도 벗어나고 자유로워지고 싶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여유롭게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전기가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전기 들어오자마자 충전선 찾아서 꼽고!
나가서 별 구경을 하는데 진짜 너무 너무 추운데 광해가 없으니까 이건 뭐 진짜 미쳤다. 눈이 암적응을 할수록 별이 더 많이 보였다. 은하수도 보이고 너무 너무 예쁘다. 사진도 몇 장 찍고 들어와서 L과 J 방에서 보이차를 내려마셨다. 역시 보이차가 몸을 따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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