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23. 16:47ㆍ바다 밖 여행/'22 Pamir, Silk Road
날짜 2022.11.21.
일정 란가르 - 클룩(호로그)
어제 밤, 원래 입고 있던 옷에다 등에 핫팩 붙이고 경량 패딩 입고 겉옷 패딩까지 옷이랑 옷은 다 껴입고 다른 침대에 있던 담요까지 갖고 와서 누웠는데 춥다. 이놈의 라지에이터는 폼으로 있는 건지 전기 난로 만큼 바로 옆에 10센치만 따뜻한 것 같다.
머리가 푹신하게 아래로 떨어지니까 뭔가 불편하고 숨을 잘 못 쉴 것 같은 느낌이다. 일기 쓸 때에는 너무 졸려서 꾸벅꾸벅 졸더니 막상 자려고 하니까 잠이 안와서 뒤척이다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그런데 12시 조금 넘어서 확 깼다. 2시간 조금 넘게 잔 것 같은데 왜 깼는지 모르겠다. 내 방을 중심으로 밖에서 드르륵드르륵 소리가 들리고, 발소리 같은 것도 나고 계속 무언가 소리가 나서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방문을 잠궈두기는 했는데 이러다 누가 확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고. 내가 자는 곳만 식당이 있는 안쪽이 아니고 따로 증축한 것 같은 별채?에 화장실이 있는 근처인데 여름에야 이 바깥쪽까지 게스트들이 차겠지만 이 쪽에 묵는 사람이 지금은 나밖에 없다. 그래서 더 불안해졌다. 혹시라도 누군가 들어오면 뭔가 후려칠 수 있는 딱딱한 걸 옆에 두고 자야하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방 불을 다 꺼버리면 진짜 깜깜한데 그러면 더 불안해서 불 켜두고 머플러로 눈 가리고 다시 잠을 청했다. 아마 칼리이쿰에서 새벽 2시에 남자 둘이 와서 문 두드리고 깨운 일이 있어서 그런가보다.
혼자 했던 예전 여행들이 생각났다. 라오스 시판돈의 문이란 문은 다 뚫려있던 숙소. 나 혼자 썼던 데도 마찬가지지만 연극배우 언니랑 쉐어했던 방도 창문이랑 문이란 문은 다 열려 있어서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는 데였는데 그런 데에서 혼자 잤어도 나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미얀마의 진짜 창고 같았던 허름한 숙소, 중국에서 혼자 잤을 때나 그 어떤 때에도 걱정 한 번 한 적 없었다. 보호해주는 존재가 있어서 교통 사고는 당할지언정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지금보다 더 무방비하게 혼자 다닐 때에도 (그 때 혼자 쉐어했던 택시 기사나 히치 하이킹 해 준 사람들이 날 끌고 어디로 가도 나는 어떻게 못하는 일 아니었는가?) 걱정 따위 하지 않았는데 아마 칼라이쿰에서의 경험이 나에게 걱정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예전에 혼자 다닐 때에도 안전했고 전혀 불안하지 않았던 여행들을 생각해보니 마음이 편해져서 그 다음에는 잠이 든 것 같다. 담요도 내 체온으로 덥히고 나니 따뜻해서 나름 잘 잤다. (이불 속에 있으면 따뜻하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서 짐 다 싸놓고 동네 한 바퀴 걸을 겸 나가보려고 했는데 밖에 바람 부는 걸 보고 생각을 접었다. 저녁 먹었던 곳에서 말소리가 들리길래 가 봤더니 불도 피우고 훈훈하고 따뜻하다. 불 쬐면서 커피 한 잔 마시려는데 L과 J도 일어나서 나왔다. (L은 어제 밤중에 나가서 한 시간 반 동안 별 사진 찍었다고 한다. 별도, 은하수도 너무 예쁘다. 그 와중에 다른 팀 가이드인 오레스도 사진에 같이 찍혔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은 덕에 일찍 길을 떠났다. 밖에 잠깐 나왔는데도 바람이 쌩쌩 불고 엄청 춥다.
차에 타서 보이는 풍경도 계속 설산이다. 설산이 보이는 곳마다 장관이었는데 뷰 포인트에서 알리가 세워줘서 사진도 찍고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이 터졌다.
출발한지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눈에 차가 막혔다. 알리 생각으로는 후진을 했다가 앞으로 가려는 것 같은데 계속 걸려서 차가 미동도 안 했다. 삽 들고 바퀴 주변으로 다 파도 소용 없고. 거의 20분을 눈이랑 사투를 벌였다.
그 사이에 오레스네 팀 차도 와서 차 당겨서 빼내줬는데 사실 문제는 거기가 아니라 그 앞이 더 문제였다. 처음에는 우리보다 먼저 간 차 바퀴 자국이 보였는데(바퀴 자국이 있는 거 보면 오늘 아침 혹은 어제 저녁에는 갔다는 얘기인데) 눈이 새로 내리는 건 아니고 이미 내린 눈이 바람에 날리면서 앞서 있었던 찻길이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니 지금 여기 걸린 곳에서 빠져나간다고 해도 그 앞에 있을 이러한 곳들이 계속 문제인 거지. 심지어 오늘은 패스도 넘어야 하는데.
오레스도 오레스네 드라이버도 상황을 보더니 안될 것 같다고 이 상황에서 더 가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했다. 그드른 클룩(호로그)으로 돌아가겠다고 했고, 우리도 클룩으로 돌아가는 방법 외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가는 동안 생각해봤다. 내가 바라는 일이 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나는 항복하고 납짝 엎드릴 수 있는가?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지만 무르갑도 가지 못하는 건 무척 속상한 일었다. 왜냐하면 아주 아주 오래 전부터 파미르에 오고 싶었으니까. 카라쿨 호수야 그렇다 치더라도 무르갑까지는 와야 파미르에 왔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가는 길 내내 마음을 정리했다. 무르갑에 가지 못해도 남은 여정 또한 빛날 것이다. 모든 것을 맡기고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기만 하자, 고 마음 먹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미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기도 하고, 점점 올라가다 다시 내려가는 길이라 흥이 안 났던 건지 내려가는 길에는 미친듯이 잠만 잤다. 머리 부딪히며 잠만 자대는데 몇 시간을 계~속 잤다. 점심 때에는 이사카심에서 식사를 했다.
란가르 가는 날 이 곳 저 곳을 들러서 그렇지 아무 데도 들리지 않고 가기만 하니까 오후 4시 반 경에 클룩(호로그)에 도착했다. 둘째날 왔던 숙소인 이브라힘네 ‘like home guest house’에 왔는데 여기는 우리가 묵었던 다른 곳보다 따뜻했고, 따뜻한 물도 잘 나오고 진짜 집처럼 포근한 느낌이 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한 번 왔던 곳이라 그런지 진짜 집 같다. 나중에 돌아올 때 여기 또 올텐데 ㅎ
포근한 숙소에서 차 마시며 잠깐 쉬다가 해 떨어지기 전에 동네 둘러보기 위해서 나갔다. 알리가 알려준 센트럴 파크(시티 파크)까지 걸어갔다 오는데 이 곳 사람들은 이방인에게 딱히 더 호의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산책하고 들어와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으깬 감자와 짤막한 누들! 진짜 맛있다. 논에 버터 발라 먹는 거야 원래 좋아하니까 그렇다치고 기름 둥둥 스프도 나는 나쁘지 않았는데 으깬 감자가 제일 입에 맞는다. (셋 다 고기나 양고기를 원래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그런가보다) 사과도 너무 맛있어서 하나 다 먹고! 이제껏 먹은 것 중 가장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방에 들어왔는데 아직 저녁 7시밖에 안됐는데 잠이 쏟아졌다. 거의 저녁 8시부터 자기 시작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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