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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pal - Trekking/'24 GHT

<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 네팔 #9 4,200m 캠프 - 4,700m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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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 네팔

 

2024.7.27

4,200m 캠프 - 4,700m 캠프

 


 

 

늘 그렇듯 밤에 잠을 잘 못 잤다. 밤에 한 차례 비가 내렸는데 아침 먹고 출발할 때가 되니 비가 더 많이 쏟아졌다. 출발 때에는 비가 안 오길 바랐는데... 비가 오니 챙길 게 더 많아진다.

야영지 바로 앞의 산을 오를 거라 새벽부터 그 앞의 물을 건너야했다. 빠상이 물 건너는 것 도와줬는데 물이 엄청 차다. 또 바지가 폭샥 젖었다.

보슬비만 내리는 정도라 다행이라 여기며 산을 올랐다. 어디가 길인지도 모르겠고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그래도 이 대까지는 한 걸음 한 걸음 잘 올랐다. 

윗동네에는 꽃도 피어있고, 예쁘다 예쁘다 감탄하며 올라갔는데 점점 빗줄기가 거세어졌다. 

 

 

처음에는 입고 있는 바람막이로 견딜만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비가 더 많이 내리니 바람막이도 젖고, 그 안의 옷도 젖고, 장갑도 다 젖었다. 

 

 

원숙 언니 따라서 우비를 꺼내 입었다. 그 전까지는 비 때문에 추웠는데 우비 입으니까 추위가 좀 가신다. 우비가 비만 막아주는 게 아니구나..

우비 안에 모자를 쓸 수 없어 불편하고 걸을수록 우비가 시야를 가려 너무 불편했다. 이런 장비들이 체력을 20%는 더 뺏는 것 같다. 

산행 중 비가 계속 오니 쉴 수가 없다는 게 제일 큰 문제였다. 

쉬었다 갔으면 했는데 마땅히 쉴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그게 더 지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 쉴 곳도 없을 때의 막막함이란...

결국 큰 바위가에 미선 언니 타프를 치고 잠시 비를 피했다. 

오늘은 갈 길이 멀어 도시락을 싸 왔다. 싸 온 감자와 계란을 타프 안에서 쭈그리고 앉아 불쌍하게 먹고

계속되는 오르막을 올랐다. 

저~~ 멀리 스탭들이 가고 그 뒤로 원숙 언니와 미선 언니가 보였다 점이 되어 사라졌다. 언니들이 쉬시는 포인트까지 20m 남은 길이 도대체 왜 이리 힘들고 오래 걸리는 건지.. 머리가 아프거나 토하거나 하는 고산 증세는 안 나타났는데 이렇게 천천히 숨차며 올라가는 것도 고산증이 아닌가 싶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음을 때면 그 다음 숨을 고르는데 시지프의 신화 생각이 절로 난다. 

그 와중에도 경치는 끝내줬다. 첩첩산중에 나무 한 그루 없다. 낮게 자라는 풀만 조금 있을 뿐이다. 바위 산, 무너져내리는 돌들. 아.. 아름답다. 몸은 정말 너무 힘들었지만 내가 이거 보러 왔지 싶다. 사람 한 명 없는 빈 큰 산에 우리만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황홀하고 감사한지! 경사가 무지막지한 오르막을 오르는데 다행히 아까보다는 비가 잦아들었다.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힘들었다. 60도는 되는 것 같은 경사에 진흙길이라 발이 푹푹 빠져 걷는 게 더욱 힘들었다. 주변에는 안개가 자욱해 보이지도 않고. 앞서 가는 언니들.. 희숙 언니와도 격차가 점차 벌어졌다. . 

힘들긴 하지만 지난 번 폭순도 레이크 올라갈 때처럼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내가 많이 힘들어 보였나 보다. 린지가 오더니 가방을 달라고 했다. 그 정도로 힘들어 보였나? 내 가방을 내가 안 메는 게 자존심이 상하기는 했지만 내가 늦어서 일정이 늦어지는 게 더 민폐인가 싶어서 가방을 건넸다. 처음에는 가방이 없어서 날아갈 것 같았지만 몇 걸음 걸으니 똑같이 힘들다

고도를 찍어보니 5,100m이 넘었다. 그러니 이렇게 힘들지.. 힘들 만 하다. 

힘겨운 오르막이 지나고 평지길에서 다시 가방을 받아들고 갔다. 계속 오르다 평지길? 덜한 오르막길이 나오니 살 것 같다. (그렇다고 안 힘든 건 절대 아니다.) 

 

 

 

돌무더기 길을 내려오다 잠시 앉아서 간식 먹고, 율무차를 마셨다. 비는 진작에 그쳤지만 추울까봐 계속 입고 있는 우비가 거추장스럽다. 

저 멀리 보이는 거미줄같은 길로 린지랑 미선 언니랑 희숙 언니가 벌써 간 거면 어쩌나 싶었다. 

 

다행히 아래 광활한 자연 속에 캠프 사이트가 있었다. 

희숙 언니가 텐트 있다고 알려주실 때 정말 어찌나 반가운지! 탄성을 지르게 된다!

 

 

저녁으로 뜨끈한 국수(국물 있는 네팔식 비빔 국수)를 먹고 원숙 언니가 가지고 오신 꽃차를 마셨다. 

차 마시기 전이었나? 식사 전이었나? 시간이 남아 캠프 사이트 주변을 걸었다. 

어제, 오늘처럼 사람 없는 허허산속에서 자는 건 정말 황홀하다. 아침에 비 맞고 산 탄 일이 까마득하게 오래 전 일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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