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 네팔
2024.7.31.
비제르(3,850m) - 포 가온(4,087m)
오늘은 갈 길이 멀다. 오전 6시 40분 경 출발. 오늘 고개를 두 개 넘어야 한다는데 동네를 나서자마자 바로 뒤에 있는 산을 넘어야 했다.


처음에는 살랑살랑 기분 좋게 잘 올라갔다. 빠상한테 네팔어 단어 배우면서 재미있게 올라갔고, 처음 커피 마시며 쉴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 다음 경사 올라갈 때 내가 제일 뒤에 쳐져서 늦게 올라갔다. 그래도 며칠 전 비 오던 날의 5,000m 고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긴 하다.





소남이 가방 올려다 준 정상에서 잠시 쉬었다.



내가 너무 뒤쳐졌는지 저만치 앞서 올라간 소남이 다시 내려오더니 내 가방이랑 미선 언니 가방을 받아줬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내 가방을 내가 못 들고 가는 게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ㅠ 그런데 가방이 없다고 날아가지도 못한다. 처음 몇 발작만 가볍지 그 다음부터는 똑같이 힘들다.


여기까지 올라가면 오늘 우리의 목적지가 보인다고 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보이긴 다 보였다.

'포 카르카'에서 묵을 줄 알았는데 물이 없어서 캠핑 할만한 데가 없어 맞은편에 보이는 마을까지 가야한다. 뚝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가야 하는 루트가 눈에 훤히 보인다;;

희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며칠 전 비오는 날, 겹겹이 쌓인 산중에서 도착지가 어디인지 보이지 않는 막막함과 오늘처럼 목적지가 보이지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거랑 어느 게 더 나을까? 보이는데 힘겹고 도달하지 못하는 것과 보이지 않아 막막한 것, 우열을 가릴 수가 없구나;;

그 다음에는 내리쬐는 뙤약볕에 주구장창 내려갔다. 무릎이 아프다.. 눈에 보이는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 없는데 계속되는 내리막에 무릎이 콕콕 쑤신다. 내 보행법에 문제가 있는 걸까? 도저히 언니들만큼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평평한 지형이 나오면 여기서 물 구할 수 있으면 제발 여기에 텐트 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희망사항일 뿐이었지만 ㅠ

내리막의 끝까지 가서 계곡의 다리를 건너고 나면 또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맞은편에 노새들이 올라가는 게 보이고 그 뒤에 빠상 한참 뒤에 직메와 소남이 천천히 절벽 아래 길을 올라 지그재그로 오르는 것이 보였다.

우리 모두 물도 다 떨어져서 목도 마르고 체력이 바닥났다. 한 걸음 한 걸음 도대체 무슨 힘으로 오르는지, 무슨 생각으로 오르는지 모르는 채 사지만 움직였다.

결국 린지가 미선 언니랑 내 가방을 들어줬다. 린지도 갈증 나고, 지치고 힘들었을 텐데 미안했다.

숨이 넘어갈 것처럼 너무 힘들다가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가 내가 산을 좋아하는 게 맞나 싶다가 이 다음에도 내가 또 할 수 있을까 싶다가... 몸이 너무 너무 힘드니까 옆에 있는 계곡으로 떨어지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중간에, 린지가 들어주던 가방을 들쳐메고 올랐다. 늘 날아다니시는 원숙 언니도 힘들어하시는 건 처음 봤다. 오히려 희숙 언니가 마지막까지 페이스 잃지 않고 올라가셨다.

물이 없어서 갈증나고 죽을 것 같다. 빨리 도착해서 쉬고 싶은 생각만 간절하다. 그 때 마부 깐차가 물통을 들고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어찌나 반갑던지!!

생명수였다 ㅠㅜ 별로 마시고 싶지 않았던 오렌지 쥬스 한 잔 다 마시고 따뜻한 물 마시니 살 것 같았다. 이제 얼만큼 남았는지 물어보니 30분이라고 한다. 30분이면 힘내서 가봐야지!

달달한 오렌지 쥬스의 열량이 엄청난지 걸어진다. 스틱질을 하는 것마자 힘들어서 땅에 질질 끌고 터덜터덜 걸어갔다. 이미 힘은 빠질대로 빠지고 체력은 동이 난지 오래인데 아직도 다리가 움직이는 게 신기하다. 고개 오르고 조금 걸으니 노란 텐트가 보였다. 빨리 도착하고 싶다 ㅠ

도착해서는 너무 피곤해서 밥이고 뭐고 그냥 자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들었다. 드러눕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들었지만 8시쯤 돼서 저녁을 먹었다. 탈수 때문에 다들 물과 국만 엄청나게 들이키고 뻗었다.
내일은 휴식이다. 정말 다행이다. 그 다음날 또 큰 고개를 넘어야 한다는데 그건 나중에 가서 생각하고 내일 쉴 생각하니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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