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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pal - Trekking/'24 GHT

<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 네팔 #18 챤디 콜라 - 타클라 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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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 네팔

 

2024.8.5.

챤디 콜라 - 타클라 콜라

 

오늘이 몇일인지 무슨 요일인지 감도 가지 않는 평화로움과 자유로움. 마치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처럼.

 

하루종일 핸드폰과 노트북을 들여다 보던 삶에서 벗어나 있으니 가지고 온 인공 눈물을 쓸 일이 없다. 루테인도 안 먹는데 눈이 뻑뻑하거나 침침하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 귀여운 꽃밭이 보이는 캠프지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북엇국이 나왔다.) 강길을 따라 내려갔다. 

 

꽃밭을 지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파른, 무너지는 흙길을 걸었다. 나는 그래도 무릎 아픈 길보다는 이런 길이 낫다. 등산화와 스틱으로 중무장한 우리는 그렇다 쳐도 마부들은 슬리퍼 끌고 잘만 다닌다. 포터들도 그 무거운 짐을 지고 비오는 날 슬리퍼만 끌고 잘 다니고. 온갖 장비로 중무장하고도 헉헉거리고 못 걷는 게 부끄럽다.

 

 

 

암벽 타듯 바위를 내려갔는데 밑의 길이 더 위험해서 다시 기어 올라갔다. 스탭들이 다 잡아주고 끌어주고 배낭 메주고 하면서. 

 

우리는 아래쪽에 내려와 기다리고 있는데 문제는 말들이었다. 너무 가파르고 길이 없어서 말들이 올 수가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안 오기에 왜 그렇게 오래 걸리나 싶었는데 나중에 이해했다. 말들이 가파른 길을 내려올 수가 없어서 물을 건너 반대쪽으로 가고 다시 물을 건너 우리가 있는 쪽으로 건너와야 하는 것이었다.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갔다가 다시 왼편으로 돌아와야 하는 셈. 

건널 때 보니 줄을 말 목에 걸어서 안 오려는 말을 당겨서 건너게 했다. 그렇게 아홉 마리를 했으니 오래 걸릴 수밖에. 대장 말에서 세번째 말까지 건너니 나머지 말들은 따라서 건넌다. (물론 앞의 말들은 안 가려고 뻐퉁겼지만. 너네도 참 고생이다..)

말이 싣고 있던 짐은 절벽에서 하나하나 줄로 내려서 다시 말에 싣기 위해 우리가 있는 지점으로 펨바와 깐차가 옮겼다. 정말 다들 너무너무 고생했다 ㅠ 힘이 안 되니 카고백 나르는 것도 도와줄 수가 없고. 원숙 언니 말씀대로 감사함을 표하는 것, 잘 웃고 좋은 에너지를 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다. (펨바 다이는 카고백 나르느라 기력이 쇠했다 ㅠㅜ)

소남이랑 깐차는 웃통 벗고, 밧줄 던지고 끌고, 말 몰며 일하는데, 군살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잔근육만 있는 까무잡잡하고 마른 몸매에서 생명력이 넘친다. 활기 넘치는 인간의 신체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들은 우리 때문에 고생하는 게 마음 아파서 눈물을 훔치셨다 ㅠ

티베탄 브레드와 꿀, 야크 치즈를 점심으로 맛있게 먹고 다시 길을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이 갈 수 있는지 길을 보러 린지, 펨바와 마부들이 떠났다. 말들도 우리도 한참을 기다렸다. 말들도 짐 메고 우리도 짐 메고 ㅎ 

얼마나 지났을까? 거의 한 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반대편에서 빠상이 꽃 한 다발을 가지고 나타났다. 꽃다발을 흔들며 이리로 오라고 손짓했다. 

희숙 언니가 1번 타자로 출발하셨다. 너무 쑥쑥 잘 가시기에 나도 쉽게 건널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물살이 장난 아니었다. 상상 이상으로 세서 내가 팔로 버틴다고 버틸 수 있는 물살이 아니었다. 상체만 간신히 매달리고 하체는 쓸려내려갈 뻔하면서 바지가 엉덩이까지 다 젖었다. 

그 다음 원숙 언니랑 미선 언니가 건너셨다. 미선 언니도 허리까지 다 젖으셨다. (마지막에 빠상이 갖고 온 꽃다발 쟁취는 미선 언니가 하셨다 ^^)

 

넘어가서 정신 차리고 신발 신고 하는 동안 말들도 다 건넜다. 이번에는 짐도 다 지고 아까보다는 덜 두려워하며 건너는 것 같았다. 

 

또다시 비탈길 같은 숲길을 한참 걸어갔다. 

이번에는 빈약해 보이는 통나무 다리를 타고 건너야 한단다. 먼저 포터들이 짐 들고 건넜다. 우리도 그쪽으로 가서 건널 준비를 했다. 희숙 언니는 매낭도 메고 쓰윽쓰윽 건너가셨다. 

나는 배낭도 내려놓고 갔다. 초반의 물 건너는 건 문제가 아니었는데 느슨하게 사선으로 묶인 밧줄이 문제였다. 가다가 어느 시점에서 밧줄을 놓고 균형을 잡고 통나무 다리를 건너야 했다. 끝까지 밧줄을 잡고 갔더니 마지막에는 몸의 균형이 무너져서 밧줄에서 손 떼고 균형 잡기에도 이미 몸이 많이 기뚤어져 진짜로 떨어져 죽는 줄 알았다. 

진짜 죽을 것 같았는데 소남이랑 직메가 잡아줘서 살았다. 휴.. 불어난 계곡물의 위험성을 제대로 안 날. 

물 건너고 나서는 높은 산을 오른다기에 각오 단단히 하고 스틱도 짧게 잡았는데 이게 웬 걸. 올라가자마자 있는 좁은 평지에 텐트를 치고 내일 오른다고 한다. 평평한 땅이 좁아서 오늘은 텐트를 2개만 치고 둘이 한 텐트를 쓰기로 했다. 

포터들이 말에서 내린 카고백을 하나하나 일일이 나르는 동안 우리는 바위 위에 앉아 응원하는 마음으로 바라봤다. 빠상, 소남, 직메, 펨바 다이가 부지런히 움직이며 카고백을 날랐다. 린지와 깐차는 한 마리 한 마리 목줄을 씌우고 깐차가 끌고 린지가 뒤에서 밀고 엉덩이 때려가며 말들을 물 건너게 했다. 처음에 대장이 도망가버려서 다른 말부터 건넜는데 한 마리 한 마리 건널 때마다 우리는 환호하고 깐차도 신나하고! ^^

사람도 말도 짐도 무사히 넘어오고 나서 텐트가 두 동 세워졌다. 나는 원숙 언니랑 같이 쓰기로 하고 짐을 때려넣었다. (언니가 에어매트 펴주시니 완전 빵빵해졌다!)

직메 물 긷는데 원숙 언니랑 같이 가서 물도 길어왔다. 밥값했다! 

저녁 식사는 한식 메뉴에 꽁치김치찌개가 나왔다. 오늘은 많이 걷지도 않았는데 말도 안되게 밥맛이 좋았다. 우리 모두 그랬다. 마음 졸이며 응원해서 그런가보다. 매일매일 스펙타클하고 새로움이 가득하지만 언니들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신 것 같았다.

 

우리는 나중에 얼마나 이 이야기를 하고 얼마나 이 시간을 그리워하게 될까?

 

지나온 길이 벌써 그립다고 말씀하신 미선 언니 말이 딱 맞다. 지나온 시간이 추억이 되는 것이 벌써부터 그립고, 시간이 지나는 것이 아쉽고 아깝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정말로 감사하다. 내가 여기 이 곳에 있음이, 언니들과 함께 올 수 있었음이. 자연이, 사람들이, 동물들이 다 감사하고 좋고 괜찮다. 내 삶은 참 안전하고 좋고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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