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8

그림 일기와 그림 엽서

2009년에 세계 여행 때 디지털 카메라 없이 떠났다. 전자 장비를 최대한 피하고 싶어서 디카, 노트북, 전화기 하나 없이 필름 카메라와 노트만 들고 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일 후회되는 일 중 하나이다. 그 때는 발도장 찍듯 의미 없이 인증샷 찍는 게 싫어서 찍고 싶을 때만 꺼내 찍고, 필름이 부족할 땐 못 찍기도 하고 그랬는데 무조건 많이 찍어둘 걸,, 참 후회가 된다. 그 후에 잠깐 한국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갈 때에는 디카와 넷북을 준비해서 나갔다. 한창 찍은 사진이 담긴 외장하드가 떨어져서 고장이 났는데, 복구하려면 20만원이 든다고 했다. 그 때는 20만원이 아까웠고, 없어진 사진들이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아서 고치지 않았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200만원이 들어도 고쳤어야 하는 건데..ㅠ ..

India/'09-'10 India 2018.12.08

타브리즈(Tabriz)를 떠나며 '10

타브리즈를 떠날 때 짐을 빼서 숙소에 맡기고 나가려는데 방 문을 나서자마자 아이와 아빠를 만났다. 내가 묵었던 숙소는 열악하기는 하지만 가장 저렴해서 나같은 여행자도 묵고, 형편이 넉넉치 않은 현지인들도 장기 투숙하는 그런 곳이었는데 부녀는 그 곳에 사는 모양이었다. 뭐라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빠는 아이의 사진을 찍어주었으면 하는 것 같았다. 미얀마에서도 그랬다. 갓난쟁이 아이를 안고 있던 젊은 엄마는 카메라를 보더니 아이를 번쩍 들어보이며 찍어달라고 했다. 매일 보고, 옆에 있어도 또 보고 싶고, 남기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인가 싶었다. 나는 후다닥 달려나가서 사진관을 찾고 아이 사진을 인화했다. 빈 방 문 틈으로 사진을 집어넣으며 조금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도시를 떠났다. Tabriz, Ir..

시리아, 시리아...

20150909 라오스로 떠나기 전 시리아 소식을 접했다. 진심으로 마음이 아팠다. 내가 만난 무슬림들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손짓하며 들어와서 차 한 잔 마시고 가라 하고, 큰 배낭을 짊어지고 가고 있으면 먼저 차에 태워주고, 성인 남자 둘이 과일 쥬스를 시켜놓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관대하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터키나 네팔에 지진이 났을 때도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그건 자연재해니까 인간이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리아의 경우는 다르다.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인간의 욕심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고 다쳤다. 나는 마음이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보다는 내 손가락 살짝 베인 게 훨씬 더 신경 쓰이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미얀마 바간에서 만난 친구

09년에 갔던 라오스 여행에서 만난 언니에게서 메일이 왔었다. "시현씨, 마무를 기억하세요?" 기억하다마다! 얼굴 한 가득 해바라기 같은 미소를 지었던 동갑내기 친구 마무는 미얀마에서 나를 진짜 '친구'로 대해준 첫 번째 사람이었다.(그녀가 환하게 웃는 사진은 지금도 내 방 책꽂이에 올려져있다.) 이 언니는 내가 미얀마를 다녀온 이듬해에 미얀마를 여행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만났던 친구를 만난 모양이었다.마무는 그 언니를 만났을 때 시현이를 아느냐고 물었다고 했다.내가 무슨 유명 인사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니고, 그냥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한국 사람을 만날 때마다 시현이를 아느냐고 물어보았을 그녀의 순진함과,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잊지 않고 나를 기억해준다는 사실에 코끝이 찡해졌다..

인도 바이크 여행

바이크 여행은 나에게 엄청나게 큰 자유를 선물해줬다. 이동의 제약에서 벗어나 흙먼지와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달린 라다크, 잠무 카슈미르는 신이 내린 선물이었다. 내가 다시 라다크를 간다 해도 이 때만큼 자유롭고 신날 수 있을까? 아무도 찾지 않는 시골길. 그 길에서 만난, 동양인 여행자를 신기해하는 눈 큰 인도인들. 유명한 사원이나유적지보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시골길이 더 기억에 남고, 그 때 들이마신 뜨뜻한 바람과 초록 풀내음이 이렇게 그리워질 줄이야. 아무 것도 아니어서 더 오랫동안 살아있는 생생한 기억의 장면들이다.

India/'09-'10 India 2018.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