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pal - Trekking/'09 ABC

네팔 - ABC 트레킹 '09

kai.lasa 2018. 12. 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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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히말라야 - ABC 트레킹 '09

 

산을 좋아하시는 부모님 덕에 어릴 때 우리집은 매년 어린이날마다 등산을 했고. 수시로 산으로 들로, 유적지로 여행을 다녔다. 뭣 모르고 따라다니던 꼬맹이 시절을 지나 청소년이 되고 나서는 등산이 싫었다. 힘들기만 하고, 어차피 다시 내려올 것 뭐하러 올라가나 싶었다. 이런 마음은 대학 때까지 계속되서 학교 다니는 내내 지척에 관악산이 있었는데도 다섯 번을 안 올랐던 것 같다. 

 

내가 산을 사무치게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건 세계 여행 중 네팔에 가게 되면서 부터이다. 여기까지 왔으니 산 한 번 타고 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올랐다가 산과 사랑에 빠졌고, 어린 시절 숱하게 산에 데려가주신 부모님, 특히 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산은 아빠와의 기억 중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따뜻하고 좋은 기억이다.)

 

아무 준비 없이 간 ABC 트레킹은 어쩌면 그래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가지고 있던 옷 그대로 면바지에 면티를 입고, 신던 운동화 그대로 나무 스틱만 구해서 올랐다. 우기라 오후만 되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비에, 땀에 절은 빨래는 마를 생각을 안 하고, 거머리에 물리기도 하고, 비 맞으며 걸을 때도 있었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좋았다. 걸음이 느린 덕에 열흘 가까이 산 안에 있으면서 감사했고, 행복했고, 즐거웠다.

 

 

 

생각해보면 이 때 참 귀엽게 트레킹했다. 일행 중에 타로 볼 줄 아는 사람이 있어서 쉴 때 타로도 봐 줬고, (전차였나? 전차가 나왔던 것 같은데 앞으로 계속 전진하라고 얘기해줬던 것 같다. ^^)

가지고 간 색종이로 종이 비행기를 만들고, 소원을 적어 하늘에 날렸고,

종이배를 만들어 띄우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도 종이배 만드는 걸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참 고민하다 각자의 방법대로 창의적으로 만들어낸 종이배. ㅋㅋ

하루 6-8시간의 산행 후, 상쾌하게 씻고 나서 먹는 저녁은 그 어떤 식사보다 맛났고,

 

우기라 설산이 매일같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 어쩌다 설산 얼굴 한 번이라도 보는 날에는 그게 또 고맙고 반가워서 미쳐 날뛰었으며,

 

오랜 시간 산과 함께, 자연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를 보냈다.

 

아아,, 설산...

비록 이 날 밤 고산병 때문에 한숨도 못자고 끙끙 앓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당신이 나를 받아주지 않아도 나는 좋아..

트레킹 마치며 함께 한 사람들과 나눈 롤링 페이퍼. 참 예쁘고 귀엽게, 감사하게 다녀왔다. 

 


이듬해, 이집트 여행을 마치고 아프리카로 가려던 나는, 몇 달 동안 중동의 황토색 산만 보아서인지 녹색이 그립고, 히말라야가 그리웠다. 원래는 아프리카를 거쳐 남미로 가려고 했었는데 그 길로 곧장 카트만두행 항공권을 끊었다. 그리고 약 20일간 산 속에 머물며 지극히 평안하고 감사했다.

 

2010년의 안나푸르나 라운딩 이후 다시 네팔에 가지 못했고, 그 때 접은 남미와 아프리카도 여전히 가지 못했지만, 내 마음 속에 히말라야는 티벳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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