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에 세계 여행 때 디지털 카메라 없이 떠났다. 전자 장비를 최대한 피하고 싶어서 디카, 노트북, 전화기 하나 없이 필름 카메라와 노트만 들고 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일 후회되는 일 중 하나이다. 그 때는 발도장 찍듯 의미 없이 인증샷 찍는 게 싫어서 찍고 싶을 때만 꺼내 찍고, 필름이 부족할 땐 못 찍기도 하고 그랬는데 무조건 많이 찍어둘 걸,, 참 후회가 된다.
그 후에 잠깐 한국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갈 때에는 디카와 넷북을 준비해서 나갔다. 한창 찍은 사진이 담긴 외장하드가 떨어져서 고장이 났는데, 복구하려면 20만원이 든다고 했다. 그 때는 20만원이 아까웠고, 없어진 사진들이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아서 고치지 않았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200만원이 들어도 고쳤어야 하는 건데..ㅠ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정말 멍청했던 것 같다. 뭘 찍어야 되는지도 모르고, 왜 찍어야 되는지도 몰랐을 때니까 그랬겠지만 지금 같으면 말도 안되는 일이지..
그래도 그 와중에 한 가지 위안을 삼자면, 전자 장비를 피한 대신 그림 일기를 많이 남겼다는 것이다. 가끔 친구들이나 부모님께 안부를 전할 때에도 몇 마디 말을 쓰는 대신 그림 엽서를 그려서 보내곤 했다. 왼손으로 그림 그리고 천천히 색깔 칠하면서, 이 엽서를 받게 될 사람을 떠올리고, 그 사람의 평안을 비는 순간은 참 흐뭇했다. 멀리에서 보내는 나의 축복과 기도가 손바닥만한 엽서에 가득 담겨 그 사람에게 온전히 전해질 것만 같았다.
쉼라(Shimla) 의 카페에서 쉬면서 그림 그리고 있을 때였다. 옆에 인도인 할아버지가 손녀 딸과 함께 앉아 계셨는데, 내 그림을 관심 있게 보시더니 차를 한 잔 사주고 싶다고 하셨다. 신사 느낌이 나는 부유한 할아버지였다. 본인이 그림을 좋아해서였는지, 아니면 특이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접점이 없는 사람들이 그림 때문에 차 한 잔을 같이 마시게 되고, 그러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 건 또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지금도 아주 가끔씩 그림 그리고, 색으로 놀기도 하고, 그보다 더 가끔 만다라도 그리기는 하지만, 예전 여행 때 너무 많이 그려서인지 그 때만큼 그림에 손이 가지는 않는다. 아마 앞으로 그 때만큼 열심히 그림 그리고, 그걸로 마음을 주고 받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사진이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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