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타란찰주의 알모라(Almora)는 여행자를 머물게 할 매력적인 무언가가 있는 곳이 아니다.
여정상 지나게 된 알모라는 물이 극심히 부족했다. 동네 개들은 길가에 고인 썩은 물로 목을 축였고, 숙소의 물통에는 늘 물이 없어서 쫄쫄 떨어지는 몇 방울 물로 간신히 씻지 빨래는 꿈도 못 꿨다. 그래서 '알모라 = 물 부족한 데'라는 기억이 남아있는데, 여기에서 잊지 못할 사람을 하나 만났다.
내가 묵은 게스트하우스 주인 할아버지는 짠돌이라고 해야 하나? 여행자들 사이에서 그닥 좋은 평가를 받는 분은 아니었다. '어느 게스트하우스 주인' 하고 말하면 살짝 인상 찌푸리면서 '아~ 그 할아버지?'하고 말하게 되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나한테는 망고 할아버지인 동시에 사람 간의 관계에서 큰 깨달음을 준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된다.
네팔과 인도에서 매일 망고 사 먹는 게 낙이었던 나는, 이 날도 망고를 잔뜩 사다 내가 묵는 방 바로 앞의 테이블에 놓고 잤다. 다음 날 아침 밖에 나왔는데 숙소 주인 할아버지께서 하얀 수염에 노란 망고를 질질 묻힌 채로 아침 인사를 건넸다. 순간 '저거 혹시 내 망고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설마,, 손님 망고에 허락도 없이 손을 대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하고 잠깐이나마 할아버지를 의심한 나를 부끄러워하며 테이블 위의 망고가 담긴 비닐을 살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몇 개가 없어졌다....
다른 게스트가 먹었을 리도 없고 할아버지가 드신 게 분명했다. 당황해하는 내게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별로 안 좋은 망고를 샀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화도 안 났다. ㅎㅎ
하얀 수염에 망고 흘리며 드신 할아버지가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그 다음에 망고 샀을 때에는 내가 먼저 몇 개를 가져다 드렸다. 그랬더니 이 할아버지가 조금씩 마음을 열며 잘 대해주시는 게 확연히 보였다.
방에 초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시기도 하고, 과거에 성공한 은행원이었어서 『Who's Who In India』라는 책에 본인이 실려 있다고 보여주시기도 했다.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와 부인과 함께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는데, 몇 해 전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래도 피식 웃게 만드는 할아버지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 또한 계속 되긴 했다. 갑자기 나를 불러서는 눈이 불편하다고 뜸을 놓아달라질 않나. ㅋㅋ
그리고 어느 날은 간디가 만든 실이라며 작은 실뭉텅이를 선물로 주셨다. 그게 진짜 간디가 만든 건 줄 어떻게 아냐고 할 테지만 그 분이 거짓말을 하실 분도 아니고, 젊은 시절 영향력을 행사하던 분이셨으니 간디와 아는 사이였을 수도 있다.
그렇게 알모라에서 며칠을 지내고 떠나려는데 인도에서 두 번째로 배탈이 났다. 열이 오르고, 물만 마셔도 계속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렸다. 할아버지께서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방에 오셔서는 소화에 좋다며 민트를 챙겨주셨다. (아마도 인도 사람들은 소화제로 민트를 먹나보다.)
몸이 좀 나아지고 떠날 때가 되었는데 할아버지는 아쉬우셨는지 윗층의 햇빛 잘 드는 좋은 방(내가 묵었던 아래층 방보다 가격이 더 비쌌다.)에 묵게 해 줄테니 더 있다 가라고 하시기까지 했다.
이듬해인가? 어떤 한국인 여자분한테서 메일을 받았다. 알모라의 그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고 있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나한테 꼭 메일을 보내 달라고 했다고. 본인의 안부를 전하고 나의 안부를 묻는 내용이었다. 나는 알모라를 거쳐 간 수많은 여행객 중 하나였을 텐데 잊지 않고 기억해주신 게 고마웠다.
한 가지가 더 있다!
하루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참 해 주셨다. 어떻게 자랐는지, 어떻게 교육을 받았는지 얘기해주셨는데,
"나를 낳아주신 건 부모님이지만 내 눈을 밝혀주신 건 선생님이셨다."
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졸업한 학교의 지도 교수님이 생각났다.
그렇지, 그 분도 내 눈을 트이게 해 주셨지... 어렵고 힘들 때도 많았지만 그 분 밑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건 큰 영광이었어서 선생님께 메일을 보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 때도 연세가 꽤 되셨는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괴퍅스런 할아버지로 남았을테지만, 나에게는 어이 없지만 귀여운 할아버지로 남을 수 있었던 알모라에서의 기억이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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