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07-08
소백산 1박 2일 산행: 어의곡 - 비로봉 - 제2 연화봉대피소
Day 1.
6:40 청량리 - 9:00 단양역(12,200원, 2시간 20분 소요)
9:10 택시 - 9:37 어의곡탐방지원센터(택시비 약 20,000원)
12:35 비로봉
3:00 소백산천문대
4:05 제2 연화봉대피소+강우레이더관측소(8층전망대)
요즘에 산에 완전 꽂혀서 지난달에 설악산 대피소 예약할 때 소백산 대피소도 예약해 두었다.
친구들은 2박 3일이나 3박 4일 휴가 낼 수 있게 되면 일본이나 동남아시아처럼 우리나라에서 짧은 시간 내에 다녀올 수 있을만한 여행지에 잘 다녀오는데 내가 가고 싶은 데는 죄다 최소 열흘에서 2주 이상은 되어야 다녀올 수 있는 곳들이라 다시 국내로 눈을 돌렸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국내에도 좋은 곳들이 너무 많고, 대부분의 유적지나 사찰, 산을 아주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아니면 학생 때 간 거라 다녀온 지도 한참 되었다. 그렇게 한 군데, 두 군데 다시 밟는 재미도 소소하게 즐겁다. : )
이번에 다녀온 소백산도 9년 전인가 올랐었는데 그때는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아무 준비 없이 갑자기 갔던 거라 컨버스를 신고 갔다지;;; 다른 산과 달리 정상 부근의 능선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때에는 심지어 비도 와서 우의도, 쟈켓도 아무것도 없이 그 비를 쫄딱 맞으며 올라갔다 내려왔다. 그래도 참 예쁘고 좋았는데 ^^
서울에서 출발하는 시간과 교통편, 단양 또는 영주 근방의 마을(등산 시작점)까지 이동하는 버스 시간까지 생각하다 보니까 어느 코스로 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소백산은 충북과 경북이 끼고 있어서 영주에서도 출발할 수 있는 코스가 많은데 웃기게도, 바로 전 주에 영주 여행을 하고 왔던지라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다. (한 번 가봐서 익숙해졌으니까 그 길로 가고 싶은 게 아니라 안 가본 새로운 루트로 가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아주 아주 오랜만에 기차 타는 기분도 내고 싶었기에 청량리에서 기차 타고 단양역에서 내려, 어의곡에서부터 등산을 시작하기로 했다.
*어의곡 코스는 비로봉까지 최단 시간에 오를 수 있는 코스이고, 탐방객이 적어 자연이 아름답다고 하는 코스이다.
오랫동안 기차를 안 타서 코레일 멤버십 휴면 계정 돼서 휴면 해제하고, 아이디, 비밀번호 다시 검색해서 재설정하고, 스마트 승차권 받기 위해서 코레일톡 앱 깔고 그때마다 본인 인증하고.. 이러느라 꼬박 50분이 걸렸다..-_-+
어쨌든 무사히 기차표 예매하고 다음날 꼭두새벽부터 청량리역으로 갔다.
기차 타고 창 밖 보는 거 좋아하는데 계속 자느라고 두어 장면 봤나? 금세 단양역에 도착했다.
시골 버스는 배차 간격도 긴데 버스 시간 알아보고 기다리고 하면 시작 시간이 늦어질 것 같아서 바로 택시로 이동했다. 나는 발이 느리고 쉬엄쉬엄 가는 스타일이라 안내문에 쓰여 있는 시간보다 한참을 플러스해야 되기 때문에 시간이 더 중요했다. 해 떨어지기 전에 대피소에 도착해야 하니깐;
등산로 들어오자마자부터 풀내음이랑 흙내음이 나는데 아~ 좋다~ 내가 이래서 산에 왔지 싶다. 어의곡 코스는 발길이 드물다더니 올라가는 동안 만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쉬엄쉬엄 가다 인사 나누게 된 산님들, 대부분 어르신들은 혼자 왔냐고, 대단하다고, 무섭지 않냐고 하신다. 어떤 포인트에서 무서울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무서운 건가? 산이 무서운 건가?) 혼자 잘 다닌다고 말씀드리면 프로 등산러로 생각하셨다가 산 타는 거 보시고는 스틱 잡는 법을 알려주시고 가신다 ^^;
어의곡 코스는 계속해서 물소리를 들으며 올라갈 수 있다. 처음의 완만한 돌계단, 좀 더 경사가 있는 돌 계단, 데크 계단, 나무 계단을 오르게 된다. 데크 계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자세히 보면 등산객이 가기 힘든 부분마다 설치되어 있다. 이 무거운 걸 여기까지 이고 와서 설치하셨을 분들 노고가 이번에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어의곡(새밭 주차장)에서 3km 후부터는 공원자연보존지구이다. 갑자기 주위의 나무들이 바뀐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흙길이 많이 나오는데 양탄자나 스펀지 밟는 것처럼 폭신폭신해서 걸을 때 기분이 좋다 ^^
멧돼지 만났을 때 행동 요령이 적힌 안내문도 있었다. 예전에 지리산에서 반달곰 만났을 때 행동 요령 보면서는 반달곰 만나면 귀엽겠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멧돼지는 좀 무서울 것 같다. ㅠ
이런 거적데기 깔린 길을 지나면 탁 트인 풍광이 펼쳐진다. 어의곡 코스로 올라가다 처음으로 보게 된 트인 풍경이다 : )
여기서부터 비로봉까지, 비로봉 이후로도 한참 동안은 와~ 예쁘다~ 대박! 을 연발하며 갔다. 마침 좋은 날씨를 선물 받아서 공기도 맑고, 하늘도 예쁘고, 녹색과 파란색 다 너무너무 예뻤다!!
거의 산책하는 기분으로 룰루랄라~ 걸어갔다.
비로봉 1,439m 예전에 왔을 때는 비바람을 맞으며 올라왔는데 날씨가 쾌청한 날 보니까 또 예쁘다 ^^
다른 분들도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고.
점심 먹으며 살짝 쉬었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 어의곡 주차장에서부터 비로봉까지 5.1km 왔다면 오늘 최종 목적지인 제2 연화봉대피소까지 7.3km를 더 가야 한다.
날이 너무 좋아서 초반에는 마냥 신나서 걸었다.
목적지는 오른쪽 꼭대기인데 왼쪽 데크로 내려가야 하는 현실;;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오솔길 같은 길도 나오고, 풀숲을 헤치며 정글 탐험하는 기분이 나는 길도 나오고,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평지길도 나오고, 길도 다양하고 발목이 휙휙 돌아가는 바위(돌) 길이 아니라 걸을 때 훨씬 재미가 있었다.
드디어 소백산 천문대다!
여기에서 잠깐 쉬었다가 다시 길을 가려는데 표지판이 없다;; 길 잘못 들었다 되돌아오는 수고는 하고 싶지 않았기에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천문대 아래로 깔린 콘크리트 길을 계속 따라가면 된다고 한다. (표지판에 제2 연화봉대피소라고는 없고 죽령휴게소로 표시되어 있는데 죽령휴게소 표지판을 보면 안심하고 가면 된다.)
아~ 콘크리트길;;; 무릎이 아프다;;
한참 한참 대피소가 보이기는 하는데 나오지 않는 길을 걷다 보면 (대피소를 끼고 한 바퀴 크게 돌아야 대피소 올라가는 입구가 나온다;;;) 백두대간 제2연화봉 돌멩이가 나오고,
이런 길을 따라 올라가 (그래도 등산객들의 연골을 위해 나무 깔개를 깔아주었다.)
드디어! 제2 연화봉대피소가 나온다! 도착!!
지은 지 얼마 안 돼서 대피소 가운데 호텔로 유명한데 진짜 좋다 ㅠㅜ 불과 2주 전에 설악산 중청대피소를 경험한 나로서는 진짜 호텔 같았다... ㅜ
여자 혼자 왔다고 직원분께서 2층 끝자리를 주셨다. 매트도 깔려 있고, 자리도 조금 넓은 것 같고, 칸막이도 높아서 누우면 옆 사람이 전혀 안 보인다.
대피소 답지 않게 세면대도 있고 수세식 변기도 있고 심지어 물도 나온다! (비소가 검출되어서 식용으로는 쓰지 말랐지만;)
편리해지는 건 분명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지만 산에서만큼은 조금 더 불편해도 좋을 것 같다. 하루 이틀 정도 안 씻고, 설거지 안 한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그런 불편함은 산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감수해도 될 것 같다. 더 오래오래 자연과 함께 살아가려면.
대피소 바로 옆에 있는 강우레이더 관측소 8층 전망대에도 올라갔다 산 보며, 바람맞으며 한참 동안 일기 쓰고 멍하니 있다 들어왔다. 산에서는 굳이 음악 같은 것 듣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좋다.
이 날 저녁 구름이 자욱하게 껴서 일몰은 못 봤지만 밤에 별은 정말.... 후드득 떨어질 것처럼 너무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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