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7-28
지리산 (강제) 1박 2일 산행 - 벽소령 - 삼정마을 - 의신마을 - 화개공용터미널 - 남부터미널
Day2.
7:50 아침 식사
9:00 벽소령 출발
12:08 삼정마을
13:08 의신마을
14:14 화개터미널
17:25 남부터미널행 버스 - 21:00 서울 도착 (3시간 30분 소요, 버스비 30,500원)
비 때문에 종주는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아
밤 사이 비가 어마어마하게 내렸다.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 들으며 자는 것 참 좋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산에서 하산하라고 쫓겨나게 될 줄 몰랐다. 이제까지 날씨운이 기가 막히게 좋았으니까 이번에도 아침 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해가 반짝 나고 신나게 장터목을 향해 떠나게 될 줄 알았다.
대피소 팀장님께서 말씀하시길, 비가 너무 많이 와서 9시경에 다른 대피소 직원분들과 상의해보고 등산객들의 행보를 결정하신다 하셨다. 어제 세석으로 가려다 시간이 늦어서 벽소령으로 오신 두 분 등산객이 있었는데 그분들은 하산 결정 들으시자마자 아침 식사도 안 하시고 장대비를 뚫고 내려가셨다. 생각해 보니 그분들은 어차피 1박 2일 종주로 오신 거였으니 이래나 저래나 둘째 날 내려가셔야 하는 분들이었다. 우리는 내려가고 싶지 않았기에 결정이 순조롭게 나기 바라며 느릿느릿 움직였다.
일어났는데도 누워서 더 뒹굴대다 아침으로 미역국을 먹었다. 커피 마시면서 기다리는데 해가 나서 하늘이 맑아졌다. 역시! 날씨가 돕는구나 싶었는데 하늘에 스물스물 먹구름이 끼더니 살짝살짝 비도 내린다. 이러면 안 되는데 >_<
결국 대피소 팀장님이 오셔서 말씀하시길 하산시키는 것으로 결정났다고 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실 때쯤 날도 맑아지고 해도 보이고 있었지만 남원이랑 구례 쪽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입산 통제되었다고. 흑… 정말로 내려가기 싫어서 거짓말이길 바랐는데 우길 수도 없고 미적대며 결정 난 게 번복되길 바랄 수도 없고.. 결국 쫓겨났다. 오늘 장터목으로 가고 내일 대원사로 내려가거나 아니면 백무동으로 내려가려 했는데 둘째 날 내려가게 되다니 ㅠ 음정으로 안 내려가고 선배님들도 안 가보신 길인 의신마을 방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추억 많은 벽소령 대피소 앞에서 다같이 단체사진 찍고 아쉬운 마음을 가득가득 안고 내려갔다. 단체사진 찍어달라고 몇 걸음 내려가다 다시 올라갔는데 대피소 팀장님이 기겁을 하셨다고 한다. 대피소 측에서는 우리가 하산한 걸 확인한 뒤 보고해야 하는데 자꾸 안 내려가겠다고 버퉁기고, 기껏 내려보냈더니 다시 올라오니 우리가 엄청 골칫거리이셨을 것 같긴 하다 ^^; 다음번에 가면 커피를 대접해 주신다는 말을 믿고 약간의 행동식을 보시하고 나왔다.
슬프게 내려온 것과는 별개로 내려가는 길이 너~무 에뻤다. 비가 많이 온 덕에 물이 한가득이었는데 그래서 더 예뻤던 것 같기도 하다. 보는 건 참 예쁘지만 물기 먹은 돌탱이들이 어찌나 미끄러운지… 조금만 잘못 밟아도 쭉쭉 미끄러져서 긴장하며 걸어야했다. (선배님께서 미끄러운 길을 내려갈 때 어디를 밟으면 좋은지도 알려주셨다~)
개울도 건너고, 물이 가득찬 돌길을 지나 한동안 이어진 평탄한 숲길은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었다. 감탄 반, 아쉬움 반의 마음으로.
선배님들도 이 길 너무 예뻐하셔서 다음번에는 이 루트로 올라오자고 하신다. 그분들은 지리산에 워낙에 많이 오신 분들이라 능선루트는 이미 몇십 번을 타셨으니깐^^
오늘 장터목으로 갔어도 좋았을 거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일 하산하는 것보다 오늘 이 길로 내려가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일이었나보다. 선배님들도 아쉬우셨는지 청학동 가고 내일 서울 올라가자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지만, 이 길로 오길 잘했다고, 이거 보러 온 거라고 하실 정도로 길이 참 예뻤다.
신선 나올 것처럼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것을 바라보며 커피타임+간식타임을 가졌다. 참 여유롭다.
선배님께서, 관심이 있으면 코오롱 등산학교도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등산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여쭤보니 여러 가지 강좌가 있지만 암벽 등반이 주인가보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 내 마음이 쏠리고 에너지를 쏟고 싶은 여러 가지 중에서 어느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지. 물론 변치않는 1순위는 정해져 있다. 그렇다면 산은 나한테 있어서 몇 번째일까? 산속에 있는 것도 좋고,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이 산이었으면 좋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는데 내 모든 것을 쏟아부을 만큼 내가 산을 사랑할까?
선배님이 찍어주신 내 사진. 애초에 혼자 간 거라 셀카나 몇 번 찍겠지 내가 찍힐 거라는 생각을 안 했는데 감사하게도 경치 좋고 예쁜 곳 나올 때마다 많이 많이 찍어주셨다 :)
삼정마을이 나왔다! 지금이야 그렇지만 옛날에는 정말 산골짜기에 꼭꼭 숨은 마을이었겠다.
산한테 인사하는 마음으로 찍은 사진. 다음에 다시 올게. 조만간!
사명대사가 명상했다는 명상대
삼정마을부터 의신마을까지는 마을과 마을 사이 열결된 길이라 콘크리트가 깔려있다. 인적 없는 조용한 길. 가끔 트럭 한 두 대만 지나갔다.
의신마을에 도착했다. 화개까지 가는 버스가 방금 전에 떠나서 택시를 불러야했다. 이제는 서울 올라갈 것밖에 안 남아서 택시 부르기 전에 여유롭게 찻집에 들어가서 시원한 오미자차를 들이켜고 선배님들과 그간 찍은 사진도 주고받았다. 찍히는 것 싫어하시는 분들도 많아서 소심하게 몇 장 찍었는데 좋아하실 줄 알았으면 더 많이 많이 찍어드릴걸. 명색이 사진사인데.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기사님이 추천해주신 식당에 왔다. 산에서 물티슈로 대충 닦았던 것에 비하면 황송하게 물로 씻을 수 있었는데 (찬물 끼얹은 정도이지만 ^^) 대충 씻고 옷도 갈아입으니 무척 무척 상쾌하다!! 선배님들께 받은 게 너무 많아서 식사 사드리고 싶었는데 결국 마지막 식사도 선배님들께서 사주셨다 ㅠ
서울에 돌아간 다음에, 받은 게 너무 많아서 어떻게 보답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인사드렸는데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게 보답이라고 말씀하셔서 또 감동 ㅠㅜ 산에서 젊은이들 만나면 똑같이 잘해주라고 하셨는데 나도 이다음에 산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을 만나면 선배님들이 나한테 해주신 것처럼 많이 아껴줘야지~ 선배님들, 마음을 오롯이 담지 못하는 거친 말속에 감사함을 담아 전합니다.
버스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어서 터미널에 배낭을 던져놓고 건너편에 있는 화개장터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 유명한 화개장터! (안타깝게도 장날이 그 다음날이라 북적이는 장날 분위기를 구경할 수는 없었지만)
터미널 휴게소에서 산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다리를 건너 화개장터로 갔는데 선배님들 하나씩 아이스크림 들고 계신 모습이 좀 귀여웠다 ㅋㅋ
장터 구경하고 다시 터미널로 돌아왔다. 서울 올라가는 버스가 왔는데도 여객 이름이 다르고 출발 시간도 달라서 우리가 타야할 버스가 아닌 줄 알았다. 떠나려는 버스를 부랴부랴 세워서 잡아타고 올라왔다. 눈앞에서 버스 놓칠 뻔했네;;; 그런데 이 날 어이없게 눈앞에서 버스 놓치고, 어처구니없게 화개나 다른 곳에서 하루 더 머물고, 다음날 서울에 올라왔어도 그건 또 그거대로 웃기고 재미있었을 것 같다. 두고두고 이야기할 에피소드가 되지 않았을까? ㅎ
내 사랑 지리산 안녕! 곧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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