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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아서

20141028 산이 좋아서, 산이 그리워서 네팔로 날아갔다.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그렇게 산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어떤 작은 마을에서 영국인 청년을 만났다. 몇 마디 인사밖에 나누지 않았지만 그 청년은 산행에 부적합해 보이는 큼지막하고 우스꽝스러운 밀집 모자를 배낭에 달고, 마찬가지로 불편해보이는 무지개색 장우산을 가방에 꼽고, 면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었으며, 얇지만 편안해보이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 청년 주위를 감싸고 있던 공기는 누구보다 가볍고 자유로웠다. 갑자기 스스로가 웃기게 느껴졌다. 우기에 대비한 고어텍스 쟈켓과 등산화, 땀 흡수와 배출을 도와주는 기능성 티셔츠와 바지 그리고 스틱. 자연을 닮고 싶어서 뛰쳐나왔으면서 산에서조차 나는 온갖 가식과 인위로 무장한 채 아닌 척 하고 있다..

[실크로드 여행] 쿠처(库车)

이후에도 멋진 여행은 많았지만 신쟝 여행은 좀 특별하다.같이 했던 친구들이 좋았고, 20대 중반의 불안정함이 좋았고,기차역에 주저앉아 낄낄거릴 수 있음이 좋았다. 수업 땡땡이치고 놀러다닌 이야기,며칠씩 못 씻고 거지꼴로 돌아다닌 이야기,별 것도 아닌 이야기에 엄청 깔깔대며 웃었다. 오만방자하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던 小太阳과 편하고 좋은 친구들.지나가 버려서 더욱 그립기만 한 비단길 여행을 같이 해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쿠처역에서, 2007

[실크로드 여행] 쿠얼러(库尔勒)

지나치게 상업화된 첫번째 방문지에 실망한 우리는 아무 곳이나 다른 곳에 가고 싶었다. 어디 가 볼만한 곳이 없냐고 묻자 택시 운전사 아주머니는 그저 그런, 특색 없고 유명하지도 않는 곳에 내려다 주셨다. 뙤약볕 속에서 한참 계단을 올라 정상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묘하게 만족감과 해방감을 주었다. 시간도 많고 딱히 할 일도 없었던 우리는 아무 데나 주저 앉았다. 부드러운 바람이 솔솔 부는데 갑자기 친구의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사실 그 친구는 노래를 참 잘 부른다. 울림 좋은 목소리는 저음에서는 부드럽고 낮게 깔리고 고음에서는 안정적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는 좀처럼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아주 드물게, 본인이 진심으로 편하다고 느낄 때에만 노래 부르는데..

미얀마 바간에서 만난 친구

09년에 갔던 라오스 여행에서 만난 언니에게서 메일이 왔었다. "시현씨, 마무를 기억하세요?" 기억하다마다! 얼굴 한 가득 해바라기 같은 미소를 지었던 동갑내기 친구 마무는 미얀마에서 나를 진짜 '친구'로 대해준 첫 번째 사람이었다.(그녀가 환하게 웃는 사진은 지금도 내 방 책꽂이에 올려져있다.) 이 언니는 내가 미얀마를 다녀온 이듬해에 미얀마를 여행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만났던 친구를 만난 모양이었다.마무는 그 언니를 만났을 때 시현이를 아느냐고 물었다고 했다.내가 무슨 유명 인사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니고, 그냥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한국 사람을 만날 때마다 시현이를 아느냐고 물어보았을 그녀의 순진함과,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잊지 않고 나를 기억해준다는 사실에 코끝이 찡해졌다..

인도 바이크 여행

바이크 여행은 나에게 엄청나게 큰 자유를 선물해줬다. 이동의 제약에서 벗어나 흙먼지와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달린 라다크, 잠무 카슈미르는 신이 내린 선물이었다. 내가 다시 라다크를 간다 해도 이 때만큼 자유롭고 신날 수 있을까? 아무도 찾지 않는 시골길. 그 길에서 만난, 동양인 여행자를 신기해하는 눈 큰 인도인들. 유명한 사원이나유적지보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시골길이 더 기억에 남고, 그 때 들이마신 뜨뜻한 바람과 초록 풀내음이 이렇게 그리워질 줄이야. 아무 것도 아니어서 더 오랫동안 살아있는 생생한 기억의 장면들이다.

India/'09-'10 India 2018.07.09

소백산 1박 2일 산행 - 둘째날(제2연화봉 - 죽령휴게소)

20180707-08 소백산 1박 2일 산행: 제2 연화봉대피소 - 죽령휴게소 Day2. 5:00 기상 5:15 일출 보고 출발 6:30 죽령탐방지원센터 7:25 버스- 7:53 단양역 도착 8:28 단양역 - 10:48 청량리 도착(12,200원, 2시간 20분 소요) 대피소에서는 몸은 피곤한데도 잠을 잘 못자서, 이번에도 계속 한 시간 간격으로 깼다. 계획성 있게 딱딱 계획해서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하산 루트를 정하지 않고 왔는데 잠이 안 오는 김에 다음 날 어떻게 내려갈지를 생각해봤다. 마음 같아서는 희방사나 삼가 쪽으로 내려가고 싶었는데 오후 4시에 엄마가 오신다고 하셔서 그 전까지 서울에 도착해야 했고, 기차표를 검색해보니 오후 시간대 기차표가 거의 매진이었다. 이러다 표가 없을까봐 우선 12:..

소백산 1박 2일 산행 - 첫째날(어의곡 - 비로봉 - 제2연화봉대피소)

20180707-08 소백산 1박 2일 산행: 어의곡 - 비로봉 - 제2 연화봉대피소 Day 1. 6:40 청량리 - 9:00 단양역(12,200원, 2시간 20분 소요) 9:10 택시 - 9:37 어의곡탐방지원센터(택시비 약 20,000원) 12:35 비로봉 3:00 소백산천문대 4:05 제2 연화봉대피소+강우레이더관측소(8층전망대) 요즘에 산에 완전 꽂혀서 지난달에 설악산 대피소 예약할 때 소백산 대피소도 예약해 두었다. 친구들은 2박 3일이나 3박 4일 휴가 낼 수 있게 되면 일본이나 동남아시아처럼 우리나라에서 짧은 시간 내에 다녀올 수 있을만한 여행지에 잘 다녀오는데 내가 가고 싶은 데는 죄다 최소 열흘에서 2주 이상은 되어야 다녀올 수 있는 곳들이라 다시 국내로 눈을 돌렸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설악산 1박 2일 산행 - 둘째날(중청대피소 - 대청봉 - 오색)

20180622-23 설악산 1박 2일 산행: 중청대피소 - 대청봉 - 오색 Day 2. 출발 5:45 대청봉 6:03 오색분소 약 10:10 오색버스터미널 도착 약 10:30 오색 10:55 동서울 13:40 대청봉 오르는 길에 바람이 무지막지하게 불었다. 멀리 중청 대피소가 보이고 정상에서도 마찬가지로 바람이 엄청났다. 오색 코스가 경사가 심해서 어렵다고 하는데 나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면 최단 거리(5.4km)인 오색 코스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내려가는 길은 처음에는 올라오는 사람들이랑 인사도 하고 괜찮았는데 경사 심한 돌이 계속 이어지니까 무릎에 부담이 가는 게 느껴졌다. 예전처럼 막 아프고 한 건 아니었는데 스틱이 없었으면 아마 못 내려왔을 것 같다. 오죽했으면 뒤에..